교육에도 수요와 공급이 있다. 경제에서 기업이 공급자고 소비자가 수요자라면, 교육에서 공급자는 학교당국과 교수이고 수요자는 학생이다. 무릇 학생의 수요를 우선 반영하여 커리큘럼을 짜고 교수진을 구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수요를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교육은 비생산적이고 맹목적이다. 물론 양질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인재수급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사회진출이나 취업과 직결되는 대학교육의 경우, 수요와 공급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은 교육정책에 있어서 불가결하다. 대학교육은 경쟁력이나 인력시장과 직결된다. 시장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수한 인재란 시장경쟁력을 갖춘 인재이며, 인력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다.
대학경쟁력은 국가경쟁력이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경쟁력의 강조가 단순한 구호나 내용 없는 용어의 나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경쟁력의 콘텐츠를 따져야 할 때다. 고등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우수인력 양성과 수급이라고 한다면 인재시장에서의 수요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닐 수 있다. 대학당국자들은 지금의 대학교육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는지,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수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제까지의 대학교육은 수요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공급중심의 교육이었다. 필요할 거라는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결정에 따라 학과가 만들어졌고 강의를 담당할 수 있는 교수나 강사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졌다. 때로는 한 명의 박사를 교수로 임용하기 위해 새로운 학과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많은 과목이나 과정이 개설돼 있는데도 학생들은 정작 필요한 과목은 수강하기 힘들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든 과목이 철저히 수요조사에 입각해 개설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의 한 학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요가 있어야 하고 학과졸업자의 취업전망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이 학과의 취업전망이 어떤지 이 대학의 시장경쟁력이 어떠한지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 교육은 부실교육일 가능성이 크다. 너무도 많은 대학이나 학과가 실수요와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대학교도 너무 많고 대학생 수도 지나치게 많은 대학공화국이다. 대학경쟁력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다. 대학교육의 공급과잉은 사회적인 낭비일 뿐이다. 수요에 기반하지 않는 대학교육은 고등실업자를 양산하는 합법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요에 기반 한 양질의 교육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