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하면 떠오르는 곳, 바로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가다. 키케로의 말을 빌리자면 책 없는 대학가는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랑받는 책은 변해왔지만 대학가에는 항상 베스트셀러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당시 베스트셀러들은 대학가의 현주소를 대변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2006년에는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았을까?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과 대학가 서점 및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대학가 베스트셀러의 키워드는 수 년 째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용주의’와 ‘재미’였다.
■ 자기계발과 부, 실용주의가 최우선
“돈과 직장, 처세술, 대화법, 기획서 작성 등에 관한 실용주의 책들이 현재 대학가에서 많이 읽히는 책입니다.”(100권독서클럽 공동운영위원장 강신철 한남대 교수)
2000년대 초부터 취업이 대학가의 최대 관심사로 자리 잡으면서 올해도 대학가 베스트셀러에는 일명 실용서들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자기계발’과 ‘부’를 소재로 한 실용서는 단연 으뜸이었다.
최근 대리번역 의혹으로 여론의 물매를 맞았지만 1백 만 권 이상이 팔린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학가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의 대표적인 예. 죽음의 위기에 처한 수 백 명의 환자를 인터뷰한 뒤 인생의 의미를 풀어 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과 수 년 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도 대학가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에 이름을 올렸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1%가 다르다>와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등은 성공 노하우와 처세술을 다룬 실용서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설득의 기법을 소개한 <설득의 심리학> 역시 대학가에서 인기 있는 자기계발서다.
‘부’를 소재로 한 실용서의 인기는 해가 갈수록 더하고 있는 현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가 역시 부와 관련된 서적들이 올해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미래의 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그 부를 지배할 것인가”를 고찰한 미래 분석서인 엘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는 대학가에서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책으로 지금도 그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첫 선을 보인 <한국의 젊은 부자들>은 대학생 독자를 포함한 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석 달 동안 무려 12만여 권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 ‘재미 코드 아니면 안본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호흡이 길거나 지루하고 딱딱한 책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한다. 대학가 서점 관계자들은 “대학생들 대부분은 지루하지 않고 속도감 있는 소설류의 책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 동원대학 출판미디어과에서 수도권 소재 5개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주로 어떤 유형의 책을 읽느냐는 문항에 52%가 소설을 답했지만 인문사회과학도서 5%, 예술 관련 도서 2% 순으로 나타나 딱딱하고 지루한 책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책을 선호하는 대학가 트렌드를 입증했다. 대학도서관 대출 1위 책에 <비뢰도>, <묵향>,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등 무협 및 판타지 소설이 상당수를 차지할 정도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한 때 대표적인 대학가 베스트셀러로 사랑을 받았던 장편 분량의 책이나 인문사회과학도서 등은 더욱 입지가 좁아지는 반면,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들은 더욱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올해도 이 같은 경향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올해 대학가에서는 어떤 책들이 인기를 끌었을까?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 단연 돋보인다.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한 소년을 통해 삶에 관한 물음을 제기한 <연금술사>가 대학가 베스트셀러로 사랑을 받았으며 인간에게 ‘사랑과 성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11분>역시 인기를 얻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타워>등으로 인기를 얻은 일본의 대표 여류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성장소설인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도 빠질 수 없는 인기소설.
국내 저서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봉순이 언니>를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공지영이 7년 만에 선보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대표적 베스트셀러. 이 밖에 로렌 와이스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등은 영화 덕에 인기를 끈 대표적 원작소설들이다.
■‘ 책 읽는 대학가 만들기’ 열기도 후끈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일일 평균 독서시간은 24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또 대학생의 1인 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1~3권에 불과하다. 그마나 책을 읽는다해도 실용서나 쉽고 재미있는 책 등에 국한돼 있다. 대학가의 새로운 트렌드일 수 있으나 왠지 씁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현재 대학가에는 ‘책 읽는 대학가 만들기’ 노력이 한창이다.
최근 숙명여대는 교보문고와 함께 ‘2006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폭력에 대한 성찰’로 <우상의 눈물>, <자유에서의 도피>등 평소 대학가에서 기피되는 분야의 책을 선정, 독서의 편식 현상 탈피를 유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숭실대 도서관의 경우 매년 20명의 다독왕을 선정, 기념품을 주는 등 독서를 장려하고 있다.
교수들과 학생들이 직접 나선 경우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한남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100권 독서클럽’과 올해로 47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학연합 독서토론동아리‘자운영’.
지난 2002년 출범한 ‘100권 독서클럽’은 현재 약 2천5백명의 회원을 거느린 명실상부한 독서클럽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회원들에게 인문사회도서, 예술도서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도록 권장함으로써 ‘책 읽는 대학가 만들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959년 첫 발을 내디딘 자운영 역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정, 독서와 토론 등을 통해 회원들의 고른 독서습관과 사고력 배양에 힘쓰고 있다.
‘100권 독서클럽’공동운영위원장 강신철 한남대 교수(경영정보)는 “대학가에서 실용주의 서적이 주로 읽히는 것은 시대 변화에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자기성찰 같은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탐구할 수 있는 책을 병행해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성민 객원기자 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