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OO 티셔츠 디자인 공모전' '○○학과 XX학번 아무개 회계사 합격', '모든 곳에서 통한다 OO텔레콤'… 기업체에서 주최하는 공모전부터 취업 관련물, 각종 시험에 합격한 학생명단까지 대학 캠퍼스에서 홍보용 현수막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홍보물은 개강을 시작으로 크게 늘어나고 방학을 전후해서는 각종 특강과 배낭여행, 학년말이 되면 선거를 앞둔 총학생회와 학술모임, 강연회, 공연 등이 어우러지면서 봇물을 이룬다. 이제는 마치 어지럽게 걸린 현수막이 대학 캠퍼스 문화로까지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대학 내 선전물은 ‘홍보’의 기능을 넘어 ‘공해’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현수막, 나무훼손에 캠퍼스 미관까지 저해
서울의 H대학 캠퍼스. 지난 11월 9일 찾은 이곳은 주변에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학생뿐만 아니라 유동인구가 상당했다. 학교 정문부터 답답함이 전해진다. 주변으로 한창 신축건물이 공사 중인 탓도 있겠지만 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현수막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서다. 대학 캠퍼스 홍보물 공해 실태가 입구부터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이다.
교정의 상황은 어떨까.
교정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크기가 제각각인 현수막은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걸려있고 따로 현수막을 달 수 있도록 마련해놓은 현수막 거치대에도 개수를 넘는 광고물이 어지럽게 걸려있어 학생들의 통행마저 방해하고 있었다. 질긴 나일론줄로 현수막을 지탱하기 위해 나무에 무분별하게 묶다 보니 나무의 피해를 막기 위해 나무 기둥마다 삼베천이 감싸져 있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또 다른 현수막 줄이 그 위에 이리저리 동여매 있었다.
대운동장 주위 스탠드 공간에도 똑같은 포스터가 걸쳐지듯 둘러싸여 있고 바람에 찢어져 나간 종이와 테이프가 지저분하게 뒤엉킨 것이 볼썽 사나울 정도였다. "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현수막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지만 너무 낮게 설치되어 있고 오히려 죽 늘어놓은 현수막들이 길을 가로막아 강의동에 가기 위해 돌아가야 할 때 많이 불편하죠?" 이 대학에 재학 중인 최정열(신소재공학과 3년)군은 "예전보다 많이 정리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무마다 걸려 있는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여자대학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캠퍼스센터를 신축중인 이 대학은 정문 초입부터 공사장 펜스에 총학생회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즐비하게 걸려 있고 임시로 만들어놓은 보행자통로를 따라 각종 포스터와 현수막이 들쭉날쭉 나붙어 있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정해진 규정을 갖고 올바른 게시를 요청하고 있지만 좀더 눈에 띄기 위해 무리한 홍보가 이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학내 신축공사까지 있어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더 심해졌다"고 밝혔다.
◇ 신문가판대, 어지럽게 뒤섞인 전단지들
서울 강북에 위치한 또 다른 대학 역시 캠퍼스 내 홍보문화는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지난 11월 10일 찾은 서울 성북구 소재의 A대학은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인 정문과 학생회관 근처에 현수막이 여지없이 등장했고 수없이 붙였다 뗐다한 흔적이 역력한 게시판에는 이리저리 겹쳐진 포스터로 어수선했다.
포스터나 홍보지의 경우 따로 게재할 수 있는 게시판이 마련되어 있으나 홍보효과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선호하다 보니 특정 공간에 몰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홍보지 작업을 나온 한 공연기획사 직원 김윤종(29)씨는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장소나 매점 앞에 주로 붙이는 편?이라며 ?급하게 작업을 하다 보니 주목도가 높은 곳에 도배하듯이 붙여놓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내에 들어오는 신문이 10여종을 넘으면서 함께 배포하는 공통 신문가판대가 설치됐지만 배낭여행 또는 영어학습을 홍보하는 다른 전단지가 수북이 쌓여 있거나 뒤섞여 오히려 철지난 폐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 옆에는 공통 가판대 외에 따로 신문을 배포하는 조그만 가판대가 여럿 자리하고 있는데 모양이 제각각이다 보니 짐을 쌓아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지방 소재의 대학도 무분별한 홍보물로 인해 캠퍼스가 몸살을 앓으면서 ?클린 캠퍼스를 만들자?는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북지역의 한 대학은 연례행사처럼 매년 초와 학기말이 되면 다양한 상업 광고 문안들과 각종 강연회 등을 알리는 현수막과 광고지로 교정이 온통 뒤범벅이 된다.
이 학교 재학생 권성태(사회학 2년)군은 "단과대학 건물 복도 쪽 벽면들은 반듯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게 게시물이 붙어있다"며 "학내 게시판은 덕지덕지 붙은 종이들로 상당수가 흉물스럽게 보여 정작 게시물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현수막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무분별하게 설치되다 보니 서로 다른 현수막을 가려 홍보효과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가 하면 진입로 옆길에도 현수막을 설치해 화단에 심어둔 꽃길과 나무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이대로는 안 된다” 자정 목소리
최근 환경게시물에 관한 규약을 고시하고 규제에 나선 성신여자대학 시설관리팀 김정헌 팀장은 "어느 대학이든 동아리나 학과 행사가 많은 시기에는 현수막과 홍보물이 어지럽게 몰린다"며 "계속적으로 무분별한 게시에 대해서는 단속하지만 외부 게시물이 아닌 학생들의 홍보물은 유도에 주력하고 강력한 규제를 가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 학교마다 학내 현수막 및 게시물 부착에 관한 지침을 정해 놓았지만 불법광고물 게시를 막을만한 방안은 뚜렷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충북대의 경우 '1회 위반 시 위반내용을 통보하며 2회 이상 위반 시에는 학내 홍보물 게시승인을 하지 않는다'는 학내 현수막 및 게시물 부착에 관한 지침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단으로 게시된 홍보물을 수거하는 방법 외에는 사전에 관리하기엔 인력문제로 인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국대 학생과 직원 조찬홍씨는 "1주일에 한번씩 학교 검인을 받은 홍보물만 게시하도록 허가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홍보물이 적지 않다"며 "나만 튀고 보자는 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불법선전물을 관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클린캠퍼스 위원회를 발족, 활동을 시작한 서울산업대 류근호 클린캠퍼스 위원장은 "무질서한 홍보물이 학교를 점령하면서 상쾌해야할 아침을 기대할 수 없게 됐고 무차별적으로 현수막을 내걸면서 나무들까지 훼손되는 환경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학내 아무 곳에나 게시되는 홍보물이 어수선함을 넘어 처치 곤란한 지저분한 단계에까지 이르렀고 홍보용 스티커까지 이곳저곳 벽에 나붙으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서울산업대 측은 클린캠퍼스 위원회를 구성해 학생과 교수 뿐 아니라 대학 주변 주민들과 음식점 업주까지 동참을 호소하고 나섰다.
류 위원장은 "학내 홍보물과 외부업체의 홍보물을 구분해 지정 장소에 게시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게 목적"이라며 "캠퍼스의 쾌적한 환경조성을 위해 무분별한 홍보물 문화가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