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안보정책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에 관해서는 하나하나의 정책을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에 그 동안 참여정부가 지켜온 몇 가지 원칙만 설명 드리겠습니다. 원칙을 알면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입니다. 통일은 그 다음입니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입니다.
평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입니다. 화해와 협력, 공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신뢰와 포용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적대하고, 의심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상대의 자존심과 불안을 자극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해서는 신뢰를 쌓을 수도 없고, 화해와 협력의 대화를 이어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대범한 자세로 상대를 포용해야 합니다. 대결주의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속지 않기 위해 온갖 나쁜 상황을 가정하여 불신과 적대감을 자극하는 일보다 혹시라도 오해가 생기고 싸움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길입니다.
포용은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
물론 군사적인 대비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포용은 설사 상대가 속이는 일이 있더라도 낭패를 보지 않을만한 힘을 가진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적절한 억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포용정책입니다.
한미관계는 일방적인 의존관계를 상호관계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손해도 안보고, 자존심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태도입니다. 남의 나라 군대를 최전방에 배치해놓고 ‘인계철선’ 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주국가의 자세도 아니고 우방에 대한 도리도 아닙니다. 현실의 의존보다 심리적 의존이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이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니 주한미군 철수 말만 나오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정쟁이 생기고,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마디가 온 나라 언론을 장식하는 사태가 생기는 것입니다. 미 2사단의 후방 배치,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작전 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의존상태를 조금씩 줄여나가자는 뜻입니다.
우리 안보는 우리 힘으로, 일방적 한미관계를 상호관계로
주도적인 작전통제권은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자주국가로서의 체면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미래의 대북관계, 동북아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평시작전 통제권은 돌려받았다고 하나 실제 내용을 보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은 미래를 내다보고 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이라는 현재의 좁은 틀이 아니라, 중일 관계의 변화를 포함한 미래의 동북아 질서를 내다보면서, 현재와 미래의 안보를 조화롭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이른바 균형외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체제라는 비전을 가지고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9.19선언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원칙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이러한 노력은 장차 우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경제·안보 고려한 실용주의 외교
경제와 안보의 현실을 고려한 실용주의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우리 경제에 위기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미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우선 외국 투자자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들은 전쟁이나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장래에는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신용 평가기관이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시에 발생하는 안보상황의 안보적 영향은 대부분 장래의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에는 당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의 고려사항인 것입니다.
큰 틀의 원칙을 지키되 구체적인 외교행위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외교는 현실입니다. 외교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쌍방적인 행위입니다. 따질 것은 따지더라도 상대를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 합니다. 균형외교이든 자주국방이든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기존의 관계를 갑자기 바꾸려고 하면 마음이 상하기 쉽습니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한미관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옛날대로 가자고 하는 주장은 원칙에 맞지 않고 일거에 바꾸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안보를 내세워 국민 불안케 하는 것은 독재의 나쁜버릇
되도록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안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안보를 내세워 국민들을 겁주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독재 시대의 나쁜 버릇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장래의 안보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당장의 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비상도 걸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습니다. 이런 저런 부산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참모들의 걱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나쁜 관행의 고리를 끊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나게 당했습니다. 그래서 핵실험 때에는 다르게 대처했습니다. 과연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통권, 남북정상회담…누가 안보를 정략에 이용하나
나는 안보를 정략에 이용한 일이 없습니다.
반기문 총장 당선에 나도 생색을 좀 내고 싶었으나,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도 돈주고 샀느냐고 헐뜯는 나라에서 본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덮어버렸습니다.
정치에서 국민의 불신과 적대감을 모으는 것만큼 수지맞는 수단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치인은 성공하더라도 나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그 동안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겨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는 결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북 퍼주기, 친북 정권, 이런 말은 결코 이성적인 비판이 아닙니다.
작전 통제권은 20년 전부터 한나라당 정부가 공약하고 추진하던 것입니다. 일부 보수 언론들도 쌍수를 들어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하자고 하니까 돌변하여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우리의 안보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것이 바로 정략적 행동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야당과 언론이 몰아치니 여론마저 돌아서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자랑스럽지 않았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6자 회담이 어떤 결론이 나기 전에는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관되게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문은 항상 열어놓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이 어느 당에 유리하고 불리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2000년 총선에서 입증된 바 있습니다. 정상회담이 어느 정당에 불리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아직 아무 교섭도 실체도 없는 정상회담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구걸하지 마라, 정상회담을 하면 안 된다, 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당리당략을 위한 소모적인 정치공세일 뿐입니다.
더욱이 다음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려면 1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는 차기주자라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놓고 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만하게 보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어떤 논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할 것입니다. 국민들에게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의 대통령과 무엇을 같게 하고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당신의 안보정책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개성공단, 금강산에 대한 생각은? 작통권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그동안 참여정부의 모든 안보 정책은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