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였던 김병준 교수의 낙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분풀이였고,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적 괘심죄 때문에 내려진 “심판(心判)”의 결과였다면, 이 필상 고려대 총장은 시민운동가들의 이중적 처신에 대한 대학동료들 간의 곱지 않은 눈 흘김과 학문적 괘심죄에 걸려 넘어진 “재판(喍判)의 결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들의 사퇴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서로 다른 견해들은 처지와 형편에 따라 서로 다르기에 뭐라 한마디로 요리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성 싶다. 이 모두가 대학인 스스로 황금박쥐들에 의한 학문권력의 유착으로 황폐화된 대학특유의 심리적 공황감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필상 총장 사퇴, 학문권력 유착으로 황폐화된 대학의 공항감 반증”
대학총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이번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한 번 더 이상하게 꼬이게 되었다. 대학총장들에게서 이제는 더 이상 그 어떤 존경과 위엄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여론의 태도부터가 그렇다. 그래서인지 미국대학에서는 이미 정석이 된 이야기지만, 총장이란 “ 퍼 레터 워드(four letter word)', 즉 쌍욕거리와 같다는 식의 자괴감들이 한국의 총장사회에서도 짙게 번지고 있다. 그런 단어가 총장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선 대학총장이 하는 일이 너무 잡다하기 때문에 생긴 자괴감일 수 있다. 게다가 대학 수가 증가되어 대학총장의 숫자도 늘고 보니 총장들의 성격이나 학문적 배경들이 서로 다르기에 나타나는 총장들의 소음들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여론에 비추인 대학총장들의 행위들이 노점상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사회적 반감들에 대한 총장들의 정신적 반작용일 수도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옛날 총장들의 학문적 업적과 선비정신 같은 것에 대한 향수에 대한 국민적 정서에 응대하기 어려운 저들의 정신적인 고뇌의 표현일 수도 있다.
미국인들 대학 총장은 “퍼 레터 워드(Four letter word:쌍욕거리) 정서...한국서도 ‘꿈틀’
언론에 비추인 요즘 대학가 총장들의 모습들은 참 다양하기만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교수들을 향해 연구윤리를 들먹이며 난도질 하던 대학총장 스스로 연구비 횡령으로 구속이 되는 가 하면, 도덕군자로 존경받던 교수가 대학분규의 해결을 위해 분규사학의 총장으로 영입된 된 후부터는 오히려 더 대학 분규의 중심에 서 있는 모습에 사회적 눈길이 고울 리가 없다. 대학하고는 그 어떤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권력에 실려 별안간 어느 대학총장이 된 후 부터는 그 대학 고유의 설립정신을 훼손시키는 일에 열을 낸다. 지지세력을 모아 보겠다는 욕망 탓이다. 대학총장이라는 직함을 십분 발휘하여 비례의원으로 발탁된 전직 총장은 기존 정치인보다 더 천한 직업선동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 추한 모습들에 국민의 평점이 너그러울 수 없다. 대학총장 하다가 정치인이 된 사람치고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는 실정이고 보면 그런 일에 크게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옛날 연세대 백낙준 총장이나, 고려대유진오 총장 같은 대학자들도 정치현장에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지금의 총장 출신 정치인들의 허물만을 그리 심하게 짚어낼 일도 아닐 성 싶기도 하다.
대학 총장 정신적 고매함 잃지 말아야
그렇기는 하지만, 대학총장일 수록 사회의 등대처럼 이 사회에 우뚝 서서 저들 불량 정치인들에게 경종도 보내고 그들 탐욕스런 기업인들에게 일침도 가할 수 있는 그 정신적 고매함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만큼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백낙준총장이나 유진오 총장 등이 아직까지도 총장의 표본으로서 거론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학문적 업적이나 학자적 권위에서 기와집 같은 그 번듯함만은 굿굿하게 지켜냈었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 총장들의 학문적 업적은 저들의 그것에 비하면 비새는 ‘판자집’에 불과하다는 비유만큼은 불식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 모양이다. 이 모두는 학문적 권위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책무성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될 대학총장의 지조(志操)에 대한 타는 국민적인 목마름의 표현들이기에 그것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