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재(42·행정학) 교수는 2년 반 동안 쓰던 빨간색 명함을 버리고 파란색 명함으로 바꿨다. 이달 초 고려대에서 연세대로 스카우트됐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뒤통수를 맞은 건 연세대였다. 2004년 두 학교는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강의하던 문 교수를 데려오려고 ‘작업’에 나섰다. 그는 유명 국제학술지에 25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IT정부와 정부개혁 연구의 권위자였다. 연세대는 동문인 문 교수가 당연히 모교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연세대가 방심한 사이, 고려대가 그해 2학기 문 교수를 차지해 갔다.
허를 찔린 연세대가 가만있지 않았다. 1년 넘게 물밑교섭을 했다. 학과장을 비롯, 행정학과 교수들이 번갈아 가면서 “행정학의 드림팀을 만들자”며 릴레이 교섭을 펼쳤다. 학교본부에선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특별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보통 7년 걸리는 부교수 기간을 건너뛰고 정교수 승격을 보장했다.
#사례2
동물행동학으로 저명한 서울대 최재천(52) 교수. 지난해 그는 이화여대로부터 집요한 러브콜을 받았다. 이화여대 재단이사장과 총장이 직접 최 교수 영입을 지시했다. 6개월간 친분 있는 지인들이 총동원돼 최 교수를 접촉했고, 이화여대 출신인 최 교수 부인(현 이화여대 음대 교수)까지 설득작업에 나섰다. 학교측에선 석좌교수 추대, 대학원 에코과학부 신설, 영장류연구소 부지 제공 같은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최 교수를 독대해 “남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최 교수는 이화여대 총장을 만나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지난 학기 이화여대로 옮긴 최 교수는 “1년에 한 학기만 강의할 수 있고,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연구·강의하게 해준다는 조건까지 뿌리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스타 교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력 있는 교수를 ‘모셔 오기’ 위해 스카우트 전담팀을 운영하고 거액의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스타 교수들에게 제시하는 억대 연봉, 강의시간 단축, 석좌교수 추대 등 영입 조건도 파격적이다.
◆대학 간 ‘보이지 않는 전쟁’
인하대는 2005년부터 국내학계에서 분야별 최우수 교수를 선정해 억대 연봉과 강의시간 단축 등 최고 대우를 해주는 ‘인하 펠로우 교수(IFP)’ 제도를 만들었다. 인하대 교원인사팀 조순희 과장은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우리 교수는 지키고, 다른 대학 교수는 끌어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는 교수 특별채용을 위해 ‘서치 앤드 리크루트 시스템(Search and Recruit System)’을 도입했다. 연구실적이 뛰어난 교수 명단을 작성해 스카우트 대상을 물색한다.
현재 물리학 400여 명, 생명과학 380여 명, 화학 분야는 250여 명의 ‘후보 명단’을 확보한 상태다. 이 제도로 올해 국내 수도권 대학에서 6명을 스카우트했다.
교수 영입 전쟁은 해외까지 번졌다. 경희대는 2005년 미국 메릴랜드 의과대학에서 오태환(64·뇌과학 전공) 교수를, 올해 초에는 미국 하버드대 부속병원에서 최재원(45·소화기내과) 교수를 스카우트했다. 모 대학 관계자는 “외국 대학에 있는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해외로 나갔는데 유명하다 싶으면 대부분 우리나라 대학과 접촉 중이었다”고 말했다.
◆외국교수 영입도 불 붙어
해외 저명교수들에 대한 영입도 적극적이다. 건국대는 이번 학기에 오명 총장이 직접 나서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미(美) 스탠퍼드대 로저 콘버그(60) 교수를 석학교수로 데려왔다. 서강대는 지난해 벨기에 루뱅대의 닐 로빈슨(57·종교학) 교수를 스카우트했고, 로빈슨 교수의 부인에게도 불문학 강의를 맡겼다.
다른 곳에 스타 교수를 빼앗긴 대학과 학생들은 속이 쓰리다. 고려대에서는 문명재 교수가 강의를 맡았던 과목이 아예 없어졌다. 최재천 교수 등 몇몇 스타교수를 놓친 서울대는 지난 학기부터 교수 특별채용 제도를 도입했지만 국립대라는 특성 때문에 ‘파격적 대우’를 내걸지 못하고 있다. 김도연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똑같은 봉급으로 어떻게 노벨상 받은 교수를 영입하겠느냐”면서 “지금 여건으론 능력 있는 교수를 더 뺏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