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던 김상기(가명)씨는 지난 2005년 2월 지방 S대의 비정년트랙교원 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2년 계약직의 한시적 일자리였지만 최소한 한 번의 재계약은 더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채용 공고문에도 ‘단기 계약’이란 말은 없었고, “한 번쯤은 재계약이 있지 않겠느냐”는 담당 직원의 말을 믿었다. 채용시험에 합격한 뒤 계약서를 받아보고 나서 ‘단기 계약’임을 알게 됐지만, 이제 와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는 없었다. 김씨는 “배고픈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예정대로 지난해 10월 학교 측으로부터 “이번 학기를 끝으로 계약이 만료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는 걱정보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비정년트랙 교원을 선발해 이를 전임교원 확보율 높이는 데 써먹고, 교원에게 주어야 할 재임용 기회를 주지 않는 학교 측에 불만이 생긴 것이다. 김씨는 같은 달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했다. 11월 말, 소청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는 “김씨가 교원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교원으로 봐야 하며 교원이라면 사립학교법 등에 명시된 재임용 심사절차를 부여해야 하므로 그렇지 않은 학교측의 재임용 거부 결정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학교 측도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계약서에 ‘단기 계약’임을 분명히 밝혔고, 채용 공고에도 ‘비정년트랙 교원’임을 명시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당초 계약된 2년만 단기계약으로 임용한다고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비정년트랙 소청 건수 증가=김씨와 같은 비정년트랙 교원의 소청은 유독 2006년에 많이 제기됐다. 교원소청심사위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비정년트랙 교원의 소청이 전체 소청 건수 중 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년트랙제가 없었던 2~3년 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소청위 관계자는 “2006년부터 비정년트랙 교원의 소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대략 전체 소청 건수 중 30%는 넘는 것으로 집계 되는데 이는 이전에는 없던 현상”이라고 밝혔다.
비정년트랙의 소청 제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연세대가 처음으로 비정년트랙제를 도입하면서, 2004년부터 대학가에 급격하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경숙 의원(열린우리당)이 교육부로부터 ‘04~06년 비정년트랙제 도입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2006년 현재 ‘비정년트랙제’를 도입한 대학은 총 99개교로 전체 대학의 50%에 달했다. 2004년 비정년트랙제 도입 대학이 전체 19%인 38개교였던데 비하면 2년 만에 3배 가량 증가한 셈이다.
대학들이 비정년트랙을 선호하는 이유는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교원확보율은 높일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2005년부터 교육여건 4대 지표(교원, 교사, 수익용재산, 교지)를 각종 대학평가에 활용해 왔다. 특히 전임교원확보율의 경우 2005년 기준 57.5%에서 매년 2.5%씩 높여야 대학평가와 교육부가 추진하는 각종 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2006년을 기준으로 누리사업,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 대학구조개혁지원사업에 참여해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전임교원확보율 60%가 필수적이란 얘기다.
◆교육부의 교원확보율 인정이 문제 원인=문제는 교육부가 비정년트랙 교수도 전임교원확보율에 반영되는 ‘전임교원’으로 인정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대학들은 교원확보율 제고를 위해 비정년트랙 교원 채용을 늘리기 시작했다. 2006년 한 해만 해도 비정년트랙으로 채용된 교원은 1,642명으로 2003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비정년트랙 교원은 전임교원과는 달리 재임용, 보수체계, 승진에서 차별을 받아 ‘교원으로서의 법적지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교육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에서 보장하는 재임용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교육부도 지난해 10월, 각 대학에 보낸 ‘교원재임용 관련 심사 안내’ 공문을 통해 “비정년 교수도 교원에 해당하는 만큼 재임용 심사 기회 부여 등의 절차를 준수하라”고 지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정년트랙 교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규 교원에게 재임용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적어도 비정년트랙 교원에게 재임용 기회를 부여하라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전임교원 확보율에 비정년트랙 교수 수도 반영했던 교육부가 논란이 확산되자 궁여지책으로 ‘재임용 심사 기회 부여’ 지시를 내린 것이란 비판은 면키 어려워 보인다.
◆우수 교수에게 재임용기회 부여해야=조우현 숭실대 교수는 “비정년은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연구·교육 성과가 좋으면 계약을 연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현재의 비정년트랙 교수는 한시적 계약직으로, 대학들이 교원확보율을 높이기 위한 편법”이라고 지적했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도 “비정년트랙이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된 이유는 교육부가 이를 전임교수 확보율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비정규트랙 교원 문제에 있어 교육부와 각 대학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비정규트랙 교원을 ‘교원’으로 볼 경우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재임용 심사 기회를 부여해야 하지만, 대학들은 인건비 부담을 우려한다. 교육부도 각 대학의 재정문제와 직결되는 교수 채용에 관해서는 뭐라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들을 교원으로 보지 않을 경우, 비정년트랙을 교원확보율 제고에 활용해 각종 정부지원사업을 따낸 대학들은 큰 낭패를 보게 된다. 비정년트랙 교원을 교원확보율에 포함시킨 교육부도 난처한 입장이 되긴 마찬가지다.
이에 조우현 교수는 “비정년트랙 교수들 중 연구와 교육성과가 좋은 교수들의 경우에는 재임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학마다 이런 방법을 확대하면 그간 ‘철밥통’으로 불렸던 현재의 교수채용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정년트랙 교수를 대상으로 재임용 심사기회를 주고, 이중 연구·교육 성과가 우수한 교수를 대상으로 재계약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대학으로서는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게 되고, 비정년트랙 교수들도 재임용 심사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불만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