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 메릴린 프럼리(언어학)교수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하와이대의 경우, 크고 작은 단체들의 이벤트 행사가 수없이 열려도 참가 구성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알리거나 직접 전단지를 나눠줘 한국처럼 홍보물로 북새통을 겪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행사게시물 크기를 A4사이즈 이하로 제한해 게시물 부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는 그러나 특히 작년 무산된 총학생회선거 일정과 새 학기가 겹치면서 게시물 전쟁은 더욱 심각하다. 신입생 모집을 알리는 학생자치단체의 모집광고에서부터 각종 기관의 행사와 캠페인 현수막 등으로 게시판은 이미 포화상태다. 특히 캠퍼스를 아름답고 생동감있게 꾸며주는 나무들도 현수막을 거는 밧줄에 묶여 훼손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게시판인지 벽인지...나무는 현수막 걸이” = 증축 공사가 한창인 서울대 학생회관 건물, 현장 주변 안전을 위해 설치된 안전 그물망에 방송국 국원과 모 학생자치단체의 신입생 모집 현수막이 걸려있다.
학생회관과 행정본부 사이에는 약 2미터 높이의 나무로 만든 8개의 간이 홍보 게시판이 놓여있고, 작년 무산된 총학생회 선거 출마자들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투표율 저조로 무산된 선거인만큼 홍보를 강화하자는 것인데, 게시판이 부족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임시로 제작해 설치했다.
서울대 캠퍼스가 각종 홍보물과 전단지, 현수막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말끔하게 단장한 도서관 건물도 예외 없이 넘쳐나는 홍보물이 번지면서 예전의 너저분한 모습으로 번질 위기다.
도서관에는 별도의 게시판이 이전보다 크게 확장돼 설치됐으나, 학생들과 학내 각종 단체와 기관에서 붙이는 홍보물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외부 학원과 출판업체 등도 가세해 말 그대로 게시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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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회관 내부에는 벽은 물론 창문, 심지어는 천정에까지 홍보물이 붙어있다 |
현재 증축공사 중인 이 건물은 공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현수막이 걸려있고, 비석 방지를 위한 안정망에 까지 게시물이 붙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학생회관을 오르는 계단 난간을 타고 부착된 각종 홍보물들은 3층 게시판의 경계를 무시하고 창문과 벽, 심지어는 천정에까지 도배가 돼있다.
이 같은 홍보 전쟁에는 학생자치단체뿐 아니라, 단과대학과 각종 기구와 단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나무를 심고 가꾸기를 장려하는 식목일인 5일에도 여전히 나무들은 각종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대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진 도로 변 나무 들은 하나같이 현수막 하나씩을 끼고 밧줄에 꽁꽁 묶여있다. 나무가 마치 현수막을 걸기 위한 용도인 듯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에 걸린 현수막들만 보란듯이 바람에 펄럭인다.
이 같은 상황은 캠퍼스내 유동인구가 많은 학생회관과 도서관 주변이 가장 심각했으며, 사람들이 다닐만한 곳 어디나 예외가 없다.
신입생으로 붐비는 학기 초 캠퍼스 내 게시물 홍보전쟁은 지난해 무산된 총학생회 선출 선거 일정이 겹치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다.
이 같은 캠퍼스내 홍보전쟁은 본지가 최근 전국 27개 대학 학생과 교직원 1,7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캠퍼스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설문에서 응답자 10명 중 8명은 학내에 게시된 현수막과 포스터 등이 “너무 무질서하다”거나 “정비가 필요하다”며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캠퍼스 이용규정’ 만들어도 ‘무용지물’ = 서울대는 이 같은 캠퍼스내 환경 개선 등을 위해 지난 2001년 10월 30일 ‘서울대학교캠퍼스이용규정’을 제정했다. 규범에서 강화한 것이다.
규정 7조(조형물 설치 및 광고물의 게시 등) 2항에 따르면 플래카드와 포스터 등 광고물의 게시는 지정된 장소에 실명으로 된 것에 한해 게시 부착하되, 통행에 지장이 없고 구조물 또는 수목에 손상을 입히지 않아야 한다고 돼있다.
3항에서는 광고물을 지정된 이외의 장소에 부착하고자 할 경우에는 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 모든 게시물은 2주 이내의 기간을 엄수해야 하며, 규정을 어긴 광고물은 즉시 철거하고, 철거 비용도 설치 게시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게시물 관리를 맡고 있는 학생과와 관리과, 시설과 등도 손을 놓은지 오래다. 학생과 관계자는 “요즘 학생들은 규범을 아예 지키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학내 경찰인 청원경찰을 동원해 규제를 해도 통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고 했다.
홍보물로 넘쳐나는 캠퍼스는 그러나 학생들의 의식의 잘못만은 아니다. 게시물은 넘쳐나는데, 게시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항변이다. 또 캠퍼스가 외부에 개방된 때문에 외부 업체들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도배를 하고 나면, 게시판 밖 벽에 붙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 전자장비 도입 논의만...예산 때문에 안돼나(?) = 이 같은 캠퍼스 내 홍보물 전쟁과 환경 훼손 방지를 위해 제도적 대안과 아울러 첨단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본보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홍보물로 캠퍼스 훼손이 심각하다고 답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무엇보다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무분별한 게시문화를 막기 위해 멀티미디어 방식(인터넷 키오스크, LCD, LED전광판 등)의 첨단장비를 ‘즉시 도입해야한다’는 의견(학생·73.1%, 교직원·81.0%)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첨단 장비 도입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학생 18.1%, 교직원 17.0%)’라는 의견과 ‘자유로운 게시문화가 바람직하다(학생 8.8%와 교직원 1.7%)’는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다.
제50대 총학생회 재선거에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한성실(인문대)씨는 “학생자치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공간을 대학측이 제공해야 하는데, 학교측은 규제만 한다”며 비판했다.
한씨는 “전광판 등 첨단장비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제기돼 논의됐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인지 대학측은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만 하지 말고, 게시판을 확대하거나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형석 시설관리과장은 “2000년도 학생과장을 맡아 했을 때 전자 장비를 도입을 검토했으나, 홍보 효과와 환경 개선효과가 있느나,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로 찬반이 엇갈려 논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후 게시물 관리를 맡아야 할 학생과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학생과 관계자는 “규정을 마련해 허가를 받도록 했으나 지키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다”며 “학생들 주장대로 게시판을 아무리 만들어도 부족할 것”이라고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전광판과 와이드 스크린 등 전자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의견도 많고, 그 방식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학본부가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등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캠퍼스가 너무 넓어, 일개 부서가 맡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개별 단과대가 신경을 쓰고, 서로 협조하는 시스템 마련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