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연세대 연희관에서 열린 ‘경청(敬聽)-연세예론’ 참석 교수들은 교육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청-연세예론’은 연세대 교수·동문·학생·교직원들이 함께 대학 내·외부의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 대학의 참뜻을 되찾고자 하는 모임이다. 지난 2002년 시작돼 학기 중 매월 한차례씩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큰 주제는 대학 본연의 자세에 관한 것으로 사회 발전과 대학의 역할, ‘하버드 콤플렉스’와 연세의 미래, 지역사회와의 교감, 리더십과 행정의 역할 등이 다뤄질 예정이다. 이날 모임에서는 ‘좋은 교육,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하버드 콤플렉스’ 벗어나야
발제를 맡은 방연상 연세대 교수(신학)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하버드 콤플렉스’를 꼬집으며 해결방안으로 ‘영감(靈感)에 기반한 혁신’을 들었다.
방 교수는 “제대로 체험하지도 않고, 무조건 하버드대의 외형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준을 자꾸 높이는 것보다 ‘방향’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등 따라하기’가 아닌, 혁신의 토양인 영감과 열정을 일깨우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대학들이 재임용·승진 요건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하버드 콤플렉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가에 ‘교수 평가기준 엄정화’가 ‘대학평가 상위권 진입을 위한 선결요건’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학부교육 개선도 어렵다는 자성으로 풀이된다.
◇학부교육 강화 필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학부교육의 강화가 제시됐다.
발제자로 초대된 한동대 김영섭 교무처장은 “한동대 학부교육의 요체는 학생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고 정의했다. 이를 위해 한동대는 교수에게 ‘채찍’보다 ‘당근’을 주는 정책을 택했다고도 전했다. 승진기간 내 논문 두편만을 요구할 정도로 ‘느슨한’ 평가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학부생들과의 팀제 운영을 적극 권장해 교수의 학생 상담·교육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동대는 학부교육에 주력해 인성·팀워크·전문지식·국제화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추진해왔다. 특히 무전공 입학과 복수전공, 기숙사 생활 및 팀제도 도입으로 학부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서울대가 28일 공개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보고서’의 핵심인 ‘자유전공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영재급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유전공제’는 입학시 전공과목을 정하지 않고 일정기간 수학 후 전공을 정한다는 내용으로 수요자 중심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 2년간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하는 등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발전계획의 1순위로 ‘학부교육’을 꼽았다.
포럼에 참석한 교수들은 연구중심대학(연세대)과 교육중심대학(한동대)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부실한 학부교육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상담 트랙제’·‘교육 트랙제’ 등 학부교육을 전담할 수 있는 제도를 즉석에서 제안했다.
◇‘모방과 창조’ 겸해야
수치화된 연구실적만을 반영하는 교원평가시스템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연세대 이태영 교수(대기과학)는 “학부생 교육이 충실하지 못하면 연구중심대학도 있을 수 없는데, 요구된 연구실적 요건을 충족시키다 보면 상대적으로 강의 준비에 소홀해지는 딜레마에 처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신경숙 교수(영어영문학)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학교 정책의 ‘내용’인 학생 교육·상담보다 수치화된 ‘결과’만을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 대학의 운영 모델에 대한 모방과 창조를 동반추구해야 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선진 대학을 뒤쫓는 노력과 함께 독자적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왕배 교수(사회학)는 “외국 선진대학의 모방도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도 열려야 한다. 대학 교수들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교수들 자신의 윤리의식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진 교수(국어국문학)는 “‘세계적 대학’을 ‘연구 논문 몇편 이상’으로 규정짓는 식의 발상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종수 교수(행정학)도 “교수에 대한 인센티브나 규제만으로는 제반 여건이 월등한 세계 명문대와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학생들의 열의를 이끌어내는 우리만의 교육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