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 한동대 총장<사진>과의 인터뷰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을 듣는 시간이었다.
한동대는 12년 전인 1995년 개교한 신생 대학이지만, 명성은 반세기가 지난 대학들을 압도한다. 개교 초기부터 국제화, 무전공 입학, 인성교육 등을 중시한 한동대는 12년 만에 ‘교육방법에서도 특성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대학 교육과 경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동대는 이미 성공적인 대학경영의 모범적 전형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개교 4년차까지가 고비였다”
미국 항공 우주 관리국 (NASA) 박사연구원을 거쳐 KAIST 교수로 근무하던 김 총장이 그간의 연구를 중단하고, 95년 2월 한동대 초대 총장을 맡았을 때만 해도 현재 한동대의 모습을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설립의 미래가 불투명한 때, 재정도 충분치 않은 한 사립대의 설립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더 많았다. 김 총장도 한동대의 12년간의 실험을 '대학 벤처'란 말로 표현했다. 그만큼 모험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흥 명문’으로 한동대가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동대의 설립 초기의 이야기와 대학 운영 철학을 김영길 총장에게 들었다.
"대학을 끌어가는 데에 있어서 두 가지 갈림 길이 있습니다. 교육을 우선에 둘 것이냐, 경영을 우선에 둘 것이냐의 문제이지요. 저는 둘 중 교육을 우선순위에 두고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교육을 우선하다보니 경영도 잘 되고 학생도 잘 모집되더군요."
한동대의 올해 신입생 경쟁률은 8대 1. 점수대도 수능 평균 380점에 달할 정도로 높다. 수도권 대학에 전혀 뒤지지 않은 성과다. 그의 '교육 우선' 철학이 옳았음이 수치로 입증된 것이다.
그렇다고 김 총장과 한동대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한 시점은 개교 후 4년간.
"개교 초부터 기존 대학이 간 길을 그대로 가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교 후 4년차까지는 제 철학이 과연 맞았는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지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대학의 손익분기점을 5,000명 정도로 잡는데, 3,200명 정도인 우리 대학의 규모를 보고 증원하라는 얘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경쟁률과 지원한 학생들의 점수대를 보면 늘려도 별 문제는 되지 않았으니까요."
김 총장이 '증원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신념을 확인시켜 준 건 1999년 첫 졸업생이 배출되면서부터다.
"첫 졸업생을 배출할 때쯤, IBM 코리아에서 요청이 들어와 인턴으로 3명의 학생들을 보냈지요. 그쪽에서 평판이 아주 좋아 12명의 학생을 더 보냈어요. 그 소문이 삼성, 엘지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 사이에 퍼졌고, 단순히 취업률 보다는 '취업의 질'을 고민하는 현재의 한동대가 된 것입니다."
무전공 입학, 국제화·인성 강조
김 총장은 "이윤추구를 우선에 두는 기업은 현실 지향적이지만, 대학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의 생각이 '선견지명'을 낳았고, 당시만 해도 생소한 '국제화', '무전공 입학제', '인성교육'이 한동대 교육의 근간을 이루게 됐다.
"한동대를 개교할 당시인 94~95년은 세계 경제가 WTO체제로 개편되고, 세계가 지식정보화 시대로 본격 진입할 때였습니다. 자연히 대학을 설립하면서 학생 교육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지요."
김 총장이 학생교육에서 강조한 부분은 영어와 컴퓨터, 한자와 중국어, 인성 교육이었다. 아직 국내 대학들이 국제화에 눈을 뜨기 이전에 영어 전공과정을 운영하고, 국제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국제화 감각을 길러줬다. 여기에 정보화시대의 필수인 컴퓨터 교육과 다가 올 동북아시대를 맞아 한자와 중국어 교육을 강화한 것이다.
특히 정직을 강조한 인성교육은 기업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김 총장은 인성교육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는 '무감독 양심시험'에 대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한동대는 개교 때부터 시험 감독을 학생들의 양심에 맡기는 '무감독 양심시험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친 졸업생 중 한 명이 삼성전자에 들어가 부서배치를 위한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답을 전혀 쓸 수 없는 문제가 시험 문제로 나왔답니다. 그 시험도 무감독으로 치러졌는데, 같이 시험 본 학생들이 쪽지를 돌려 커닝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 학생은 어떻게 할 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양심을 속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백지를 내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 학생만 희망하는 부서에 배치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왜 인 줄 아십니까. 그 시험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였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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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길 총장이 이인원 본지 회장(오른쪽)에게 한동대의 교육 특성화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 한명섭 기자. |
지난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 국제화, 팀워크, 전문지식과 함께 '인성'을 갖춘 자를 꼽았다. 삼성 전자도 신입사원의 인성적인 면을 판단하기 위해 일부러 정답이 없는 문제를 냈다는 얘기였다. 김 총장은 또 '무전공 입학제'와 '복수전공 교육'의 우수성도 강조했다.
"무전공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 소질을 발견한 뒤 2학년 때부터 전공을 선택하게 됩니다. 최근 산업정보디자인학부 학생들이 요즘 들어 각종 공모전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늦게 소질과 적성을 발견해 미술에 매진하는 게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미술교육을 받은 학생들 보다 낮다는 것이지요. 또 학생들이 무전공 무학부로 소속 없이 대학에 들어오고, 90% 정도가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학부 간 융합이 잘 됩니다. 이는 공모전을 준비할 때나 졸업 후 인적네트워크 형성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요. 복합전공 교육은 기업들이 원하는 교육입니다. 저는 개교 할 당시, 기업 인사들을 만나 어떤 학과를 합치는 게 좋은 지에 관해 자문을 구했고, 그 결과 탄생한 학과들이 전산정보학부, 경영경제학부, 생명식품학부, 산업정보디자인학부 등 지금의 학부들입니다."
한동대 로스쿨이 성공하기까지
'한동대'란 이름을 전국적으로 떨친 공은 무엇보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있다. 2002년 '미국식 로스쿨'을 모델로 개원한 법학전문대학원은 현재까지 23명의 미국 변호사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영길 총장은 '국제법과 협상기술에 밝은 인재를 키워 국가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포부로 미국 국제변호사협회 이사장 출신 린 버자드 캠블대 교수를 국제법률대학원 학장으로 영입했다. 버나드 학장은 한국으로 오면서 수만 권의 법률서적을 가지고 들어와 한동대 로스쿨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법률도서관을 갖추는데 일조했다.
"미국식 로스쿨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교수가 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고민하다 미국의 최대 교단인 남침례교단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사장)을 먼저 만났습니다. 그분을 통해 미국 국제변호사협회 이사장 출신이며, 미국 기독변호사 모임의 사무총장을 지낸 린버나드 캠블대 교수를 학장으로 모시고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한동대에 와 계신 미국 변호사 자격 교수들은 모두 10명 정도입니다. 이분들은 20~30만 달러를 받던 미국의 직장을 포기하고, 보수가 5천 달러에 불과한 한동대에 선교비전을 가지고 온 분 들입니다."
졸업생들이 좋은 성과를 내도, 사립대가 가진 재정 부족의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다. 김 총장은 등록금 의존율이 65% 정도인 한동대가 ‘소수 정예’를 표방하며 교육의 질에 신경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갈대 상자’라고 소개했다. ‘갈대 상자’는 한동대에 정기적으로 발전기금을 내는 후원회 이름이다.
“개교 초기 갈대상자 운동을 폈는데 그 출발은 현재 KAIST 부총장을 맡고 있는 장순흥 교수의 조언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분이 설립 초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사회복지 단체인 ‘꽃동네’의 후원회를 모델로 기부회원을 모집하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줬지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가 무릎을 쳤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갈대상자 운동이었고, 현재는 약 2만 5천명의 회원이 한 달에 천 원 이상을 기부합니다. 갈대상자를 통해 연간 20억 원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지요.”
"공부해서 남 주자"
김 총장은 앞으로도 한동대의 지향점을 ‘학생 교육’에 두고 소수 정예의 틀을 유지할 계획이다. “교육 중심 대학을 표방하면서 학생 선발 보다는 교육에 더 신경 쓸 것”이라는 의미다.
“최근 많은 대학들이 ‘연구 중심’을 표방하고 있지만, 고등교육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학부교육도 중요합니다. 석·박사 교육도 학부교육이 튼튼하게 밑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지요. 학생 선발 보다는 4년간 사회와 국가가 요구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자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그간의 통계를 살펴보면 농어촌 특별전형 등으로 입학성적이 조금 낮게 들어온 학생의 수학능력이 절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을 뽑는 것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한동대는 앞으로도 농어촌 학생, 목회자 자녀, 대안학교, 제3세계 학생 등 다양한 전형을 통해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김 총장은 “KAIST를 떠나오면서, 자신의 연구를 마치지 못한 면은 아쉽지만, 돌아보면 더 좋은 선택은 한동대였다“고 확신했다.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인생은 KAIST를 떠나오던 50대 중반에서 마침표를 찍었고, 지금은 좋은 인재를 길러내는 데 최선을 다할 때라는 의미로 들린다.
김 총장은 조만간 한동대 설립 후 지금까지의 경험을 책으로 묶어 낼 예정이다. 제목은 ‘공부해서 남 주자’이다. 여기에는 김 총장이 개교 때부터 강조한 ‘더불어 사는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한동대에 들어온 외국인 학생 중 상당수가 제3세계에서 온 학생들입니다. 글로벌화는 단순히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과거 우리나라 학생들이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아 국가발전에 커다란 몫을 했듯이 제3세계 국가의 인재들이 한동대에 와서 공부하고, 자국으로 돌아가 그 나라의 발전을 이끌 리더가 되길 바랍니다.”
대담=이인원 회장 ·정리=신하영 기자·사진=한명섭 기자
김영길 총장=▲1939년10월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졸(64) 미국 뉴욕 RPi공대 재료공학박사(72) ▲美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74∼76), KAIST 재료공학과 교수(78∼95), 한동대 총장(95) ▲95년까지 국외특허 14건 ·국내 특허 9건 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