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3불 정책을 반대하는 대학총장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한국에는 대학다운 대학이 없다는 외국학자들의 논평에 대해 교수출신 장관으로서 심사가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교육부수장으로서의 자괴감 때문에 황망하게 튀어나온 이야기를 언론들이 필요이상의 화제꺼리로 삼았던 것이다. 여론의 지뢰밭에서 기진맥진하고 있는 ‘노무현의 미로학습’을 아차 하는 순간에 이 부총리가 범한 실수였을 것이다.
권력에 중독되었다는 낙인만은 피하고 싶었을 그였겠지만, 권력누수 상황이 그를 그렇게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 대학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간에 요구되는 체면을 지켜주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 금기를 끝내 깨어 버렸다. 신뢰에 금이 가는 파국상황이었다.
거울은 금이 가기 전까지만 유효한 것이기에, 그를 향한 대학가 총장님들의 화답 역시 고울 리가 없었다. 금자씨가 교도소를 나오면서 뱉은 그 독백 “너나, 잘 하세요”였다. 그것 잘했다 하고 국민적인 맞장구가 터진 순간이기도 했다.
너나 잘 하세요의 뿌리
교육부에 대한 국민적 냉소는 노 정권이 의지하고 있는 3불 정책 때문에 더 불거지고 있다. 3불 정책은 그 내용과 사정을 그 무엇으로 길게 설명하던 간에 관계없이 공교육의 정상화를 내세운 정치권력의 선전물이다.
이 교육난국은 3불에 대한 대학총장의 딴지걸기나 노정권의 3불정책 강행과도 상관없는 한국 특유의 고질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지금처럼 학교 입시훈련과 대학자율에 관한 것들을 노정권이 더욱더 통제하고 있기에 공교육은 더욱더 의식을 잃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입시정책과 대학정책으로는 사교육, 그 중에서도 입시훈련업체들의 무질서를 제대로 제어 할 수 없다는 것을 저들이 먼저 알고 있다.
게다가 공교육의 정상화를 3불 정책으로 성취할 수 없다는 것도 저들이 잘 알고 있다. 새로운 교육정책개발에 한계를 느끼는 장면이다. 정부가 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육산업의 본질이나 인적자원개발에 대한 이해 역시 구태의연하기만 하기에 더 욱 더 그렇다.
교육산업은 교육경쟁력을 길러줄 수 있는 3.5차의 새로운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매직산업에 속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교육대책에서 그 언제나 열외에 밀려나 있다. 저들의 마음은 공교육,사교육, 네편 내편으로 가르는 일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정부 스스로 그동안 국민에게 내 놓은 입시정책들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입시훈련업체들을 위한 예인선 역할을 하겠다는 자임서와 같았을 뿐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이러 저런 국민적 믿음은 만성적자로 기록되어 왔기에, 급기야 너부터 거듭나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공교육의 피해의식부터 떨쳐내야
정부 스스로 공교육은 피해자이고 사교육은 가해자라는 하소연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 국민이 더 이상 저들의 하소연을 귀 담아 듣지 않는 상황 속에서 교육정책자들 스스로 공교육은 사교육의 피해자라는 논리로 3불 정책을 가다듬어 왔다는 지적에 자기부터 반성해 볼 차례가 되었다.
학교장들도 같은 목소리로 학부형의 교육열을 식혀보려고 노력했었지만 백약이 무효였을 뿐이었다. 교육부가 새로운 입시정책을 만들어 낼 때 마다 공교육은 더욱더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입시훈련 시장은 반대로 표정을 관리하기에 분주했다.
공교육현장에는 입시대비 노하우들이 원초적으로 부족할 뿐이다. 입시훈련업체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입시훈련 기술들을 개발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가 학교에게 입시훈련을 산술적으로 향상시키면, 입시훈련학원산업은 저들에게 새롭게 진화된 입시훈련기술을 지수함수적으로 전파해 간다.
이 모두는 공교육 사교육 가릴 것 없이 한국교육현장이 하나같이 입시훈련에만 매몰되어 있기에 생겨난 부산물이었다. 이런 역겨운 상황들이 학부모들에게 “선 사교육 후 공교육”의 내성을 길러 준 것이며, 맹모삼천지교의 그 교훈을 입시훈련장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이의 실패는 자기의 실패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한 저들 학부모이 입시정책의 입자만 나와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정황 앞에서 정부가 딱히 해야 될 일도 별로 없을 성 싶다. 그저 말은 줄이고, 귀는 더 열어 놓은 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