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교수도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교수의 지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많은 교수들이 교수노조의 가입을 거부하고 합법화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 기업에서도 사장이나 임원은 사용자의 위치에 있으므로 노조원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교수도 업무와 관련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받고 있으며, 학교의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고용인보다는 관리인 또는 사용자의 입장에 더 가깝다. "사립대학의 교수는 관리인(managerial employees)이므로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없다"는 결정을 내린 1980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U.S. Supreme Court, NLRB v. YESHIVA UNIV)도 있다. 외국에서는 교수들의 자유로운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는 교수노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교수들이 이익집단인 노조를 통해서 교육정책에 관여하겠다는 주장은 고등교육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수월성을 추구해야 하는 고등교육의 특성상 민주적이라 함은 단순히 교수 다수의 의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이 정책수립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학생, 학부모, 동문, 설립자 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구성원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수들이 ‘고용인’으로서 이익집단인 교수노조를 결성하겠다면 보다 민주적인 대학을 만들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당연히 포기하고 ‘고용인’으로서의 신분에만 충실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대학 측도 교수노조의 의견을 교육 정책이 아니라 ‘고용인’의 요구사항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합원 다수의 의견에 따라 운영해야 하는 노조의 특성상 교수노조는 대학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 미국에서 주립대학 교수들에게 노조를 허용하는 주일지라도 명문대학의 교수들은 스스로 노조를 결성하지 않는다.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일류대학이 되려면 대학도 경쟁적인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데, 교수들이 노조의 형태로 학교정책에 개입하면 불필요한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학 비리에 대응하기 위해 교수노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교수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교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신분을 보장 받을 여러 법적 장치가 있다. 대표적으로 교수들에게 수여하는 정년보장은 지성인으로서 대학이나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라는 권리와 의무를 뜻한다. 실제로 대학에서 부패나 사익추구가 지속되는 이유는 교수노조가 없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교수들이, 특히 정년을 보장 받은 교수들이, 침묵하거나 협조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사학부패는 법으로 엄중히 다룰 일이다.
교수노조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드러나는 문제점과 지금까지 법외노조로서 교수노조가 걸어온 행보를 볼 때 교수노조의 합법화는 여전히 시기상조다. 지금 우리네 대학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의 해결책은 교수노조의 합법화가 아니라, 우리 교수들 개개인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성실한 책무이행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