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대학은 단순한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라 인적자원의 보고이다. 지식의 역할이 중요해질수록 대학의 역할은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사회의 근본적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부가 입법예고한 비정규직 보호법안 시행령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2년여 만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보호관련 3개 법안의 올 7월 시행을 앞두고, 노동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시행령은 대학사회를 완전히 비켜나 있다. 시행령에서는 박사학위를 가진 시간강사를 비정규직 보호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고학력자나 박사학위 소지자를 굳이 법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라면 적어도 그 사회의 최고지성이다. 사회학자의 거장 피에르 부르디외가 강조하는 문화자본을 가진 엘리트일 텐데 정부가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호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어불성설. 하지만 논리나 이성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현실의 모순은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오히려 더 많다.
대학개혁의 핵심은 경쟁력강화에 있다.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고 그러자면 교육프로그램 질 제고와 함께 교육주체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가르치는 사람이 제대로 준비하고 신나게 잘 가르쳐야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양극화의 모순이 자리하는 또 하나의 사각지대이다. 합법적 지위와 사회적 명예를 가진 교수는 기득권계층이지만 똑같이 교육의 주체로 강단에 서고 있는 시간강사나 비정규직 교수들은 어떤 지위나 혜택도 갖지 못한 소외계층이다.
정년교수에 비해 부당한 처우를 받는 계약교수, 강의교수, 연구교수 등 비정년교수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시간강사의 경우는 매 학기마다 생계를 걱정해야함은 물론이고 연금, 보험 등 사회적 권리로부터도 소외돼 있다. 이들에게는 교원이라는 법적 지위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1949년 제정된 고등교육법 제75조에는 원래 “대학 교원으로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강사 조교를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72년 ‘교육공무원법’에서 교원의 정의에 ‘전임강사’라는 단서가 붙었고, 77년 교육법 75조를 변경하면서 ‘강사’를 ‘전임강사’로 바꿈으로써 시간강사는 교원의 지위마저 잃게 됐다.
시간강사가 이렇게 모든 권리로부터 소외돼 있는 것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현주소이며 대학발전의 장애물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4년제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담당하는 자는 2003년 10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전임교원은 46%, 시간강사는 54%로 시간강사가 전임교원을 능가하고 있다. 4년대 대학 시간강사는 2006년 기준으로 국공립대 1만7,960명, 사립대 3만5,405명 등 총 5만3,365명이다. 이들이 대학 강의를 맡고 있는 비율 역시 공립대 37.1%, 사립대 34.6%에 이른다.
이에 비해 시간강사들이 받는 임금은 전임강사의 20~30% 수준에 그친다. 대학강사의 월평균소득은 단신가구 표준생계비에도 미달하는 100만원 이하이다. 강사에 대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률은 각각 52%와 40%에 불과하다. 직장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역시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연구공간이나 전용휴게시설마저 주어지지 않는 이들을 일컫어 '지식 보따리장사’라는 말이 있다.
대학강사들이 그동안 유일하게 희망을 걸었던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결국 박사급 강사를 제외함으로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게 됐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시간강사들에게 부여된 고등교육의 한 기둥은 언제 주저앉을지 알 수 없다. 대학교육의 주체이면서도 아무런 보호와 지원도 받지 못할 시간강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어찌 대학개혁을 논할 수 있나.
대학강사라는 비정규직 지식인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미래를 방치하는 것이다. 고학력자 보호를 비정규직법안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강사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해 파격적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재원 비율(2000년)은 24.4%로 OECD평균 80.5%에 비해 크게 낮다. 재정지원이 아니라면 적어도 대학 강사에 대한 법적인 교원 지위부여라도 서둘러야 한다.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교육의 미래와 대학경쟁력강화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