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특강' 'ㅇㅇ교수법' 등 교수법 특강이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학습내용이더라도 좋은 교수가 '잘만(?)' 가르칠 수 있다면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본지는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의 '교수강의법: 가르침의 본질'을 연재한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 강의 하고있고, 「대학 강의의 본질」을 주제로 삼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피츠버그대 교육행정학과(Ph.D.)를 졸업했고. 전세계비교교육학회(WCCES) 부회장과 교육부평가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교육혁신위원회 전문위원과 본지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양 일백 마리를 가졌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잃었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다가 그가 그 양을 찾으면 자기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함께 불러 말하기를 ‘내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기뻐하자.’고 하리라.
교사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초등교사는 학생을 가르친다고 답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는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교과목을 가르친다고 답한다고 한다. 대학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뭐라고 답을 할까? 아마 중․고등학교 교사와 유사하게 자기가 전공하는 내용을 가르친다고 답하거나 아니면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답하는 사람은 배우는 학생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고, 내용을 가르친다고 답하는 사람은 가르치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다. 후자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주로 관심을 갖게 되어 배우는 학생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혹시 배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는지에 관심을 상대적으로 적게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학교수에게 부족한 점 중의 하나는 길 잃은 양에 대해 관심을 잘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부의 경우 초・중등학교에 비해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거리가 더 멀고, 강의 시간 중에는 한 인격체와 인격체간의 만남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로부터 소외된 교수와 학생간의 만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학생이 결석을 해도, 누가 항상 지각을 해도, 아니면 수업중에 상습적으로 졸아도 그냥 남처럼 스쳐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성경의 비유는 대학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몇 년 전 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강의 중에 종종 조는 학생을 본 적은 있으나 그러한 학생을 본적이 없었기에 너무 화가 나서 이름을 호명하며 일으켜 세웠다. 생각해보니 그 이전에도 강의에 임하는 자세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조금은 심한 반응을 보였다. “네가 약물 중독이거나 아니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네 지도교수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이유를 밝히도록 하겠다.” 아마 많은 강좌에서 자주 그렇게 행동했던 그 학생으로서는 아주 황당했을 것이다.
지도교수에게 그 학생에 대해 물어보니 지도교수도 잘 알고 있었다.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으로 대학 강의 내용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준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크게 떨어져 그러한 식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학생을 졸업시키는 것은 미래 초등학생들에게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 학생을 분위기 있는 음식점에 데려가서 같이 식사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외모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이었지만 심성도 곱고, 자기도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적합한 별도의 과제를 내주고, 내 연구실로 찾아와 주기적으로 확인을 받도록 하였다. 그 이후 그 학생의 강의에 임하는 자세도 크게 바뀌고 약속한 과제도 열심히 하여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 해 그 과의 종강파티가 다른 어느 과보다도 알차고 의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그 학생은 졸업하여 초등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교수가 학생 하나하나에 그 정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는가, 그렇게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강의 준비를 더 충실히 하는 것이 전체 학생들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성인이다. 따라서 대부분은 내 관심과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고 찾아나서야 하는 학생은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으로 공부 잘 하는 학생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문제 있는 학생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거나 그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길 잃은 양의 비유는 모든 학생들에게 고루고루 관심을 쏟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 아흔 아홉 마리는 광야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이 따라야 할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결석하는 학생이 생기면 강의 후 곧바로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 이유를 파악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 교과목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취할 길일 것이다.(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본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