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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 칼럼
교수강의법-가르침의 본질

'유머특강' 'ㅇㅇ교수법' 등 교수법 특강이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학습내용이더라도 좋은 교수가 '잘만(?)' 가르칠 수 있다면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본지는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의 '교수강의법: 가르침의 본질'을 연재한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 강의 하고있고, 「대학 강의의 본질」을 주제로 삼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피츠버그대 교육행정학과(Ph.D.)를 졸업했고. 전세계비교교육학회(WCCES) 부회장과 교육부평가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교육혁신위원회 전문위원과 본지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남기 칼럼] 광주교대 교수
여행안내자로서의 교수-14
교수강의법-가르침의 본질
“선생님께서 지금 하신 강의를 듣지 않으면 학생들이 교재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가르친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공개 강의를 하셨는지요?”

이 질문 앞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교재가 있고, 특히 학생들이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우리말 교재를 가지고 공개 강의를 하는 경우는 이 질문에 더욱 답하기 어려워진다.

지금은 거의 그러한 교수가 거의 없는 것 같으나 학생들에게 재미없는 강의를 예로 들라고 하면 교재를 사용하는 강의의 경우 교재의 부분 부분을 읽어주면서 줄을 그어주는 교수, 학생들이 아는 부분은 몇 가지씩 예를 들어 설명하다가도 학생들이 잘 모르겠다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버리는 교수, 예를 들어 설명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 예가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교수 등을 든다.

그러면 교재를 가지고 강의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꽃다발, 화분, 그리고 숲 속에 핀 꽃’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제시했던 강의 방식에 더해서 ‘여행안내자로서의 교수’라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프라하 여행을 갔을 때 여행 안내자를 따라 다니면서 하루 동안 프라하를 배운 적이 있다. 도시의 주요 지점을 데리고 다니며 그 곳의 역사적 배경, 특정 건물을 이해하는 방식, 변천 과정 등등을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과거가 살아서 나에게 걸어오듯이 생생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나중에 여행안내 책자에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만일 혼자서 책자를 들고 그 도시를 여행하려고 했더라면 일주일 이상이 걸려도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은 전날 배웠던 기록을 손에 들고 혼자서 다시 여행을 나섰다. 그 전날 너무 바삐 따라 다니느라고 충분히 감상하지 못했던 것을 감상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내용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비유를 통해서도 강조했다. 충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덜 익은 술을 손님에게 대접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덜 익은 술은 맛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건강에 해로운 것처럼 잘 준비되지 않은 교수의 가르침은 배우는 학생들이 해당 과목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과목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대학생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과목을 교수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어느 여행 안내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동일한 여행지를 돌아다녔어도 배우는 내용과 느낌이 크게 달라지는 것처럼 어느 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차이가 커진다.

교수는 유적지에 애착을 가지고 그 유적지를 알리기 위해 헌신하는 안내자처럼 해당 과목을 안내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우 학년 초와 학년 말에 미래 직업 희망을 조사하여 비교한 결과 학년 초에 비해 학년말에 ‘선생님처럼 저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는 응답이 더 많아지면 그 선생님 교육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의 경우도 해당 과목에 대한 관심도를 학기 초와 학기 말에 비교해본다면 강의 성공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에 보면 구이지학(口耳之學)이라는 말이 나온다.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천박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구이지학의 수준이 아니라, 배운 것을 제 것으로 만들어 세상에 새롭게 내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행 안내자를 통해 여행지가 새롭게 태어나듯이 가르치는 사람을 통해 해당 과목이 새롭게 태어날 때 학생들은 해당 과목을 배우기 위해 굳이 강의라는 것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본지 전문위원)

박남기 칼럼 | 입력 : 05-11-14 오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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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주미 가르침의 내용을 내 안에서 모두 소화하고 전달해야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교수님!하지만 초등교사의 경우 아무리 모든 교과 내용을 숙지하고 전달하고 싶어도 과목이 너무 많고 효과적인 교수 전달법도 가지각색이라 욕심을 부릴수록 힘들어집니다. 해결책은 없을까요?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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