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흐름을 반영해 최근, 대학가에는 교수업적평가제도에 연구, 교육, 봉사 등 영역별 가중치를 달리 두는 트랙을 운영하는 대학이 늘리고 있다. 이른바 ‘선택형’ 평가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최근 교육부의 의뢰를 받아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가 전국 국·공·사립대 교수 1,3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립대(95개교)의 경우 10%(9개교)가 이 같은 교수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 개개인 특성 반영한 평가제도”=각 대학의 특성, 학문영역별 특성, 그리고 연구력 강화 등을 고려해야 하는 대학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효성 경희대 교무처장은 “향후 교수들에게 연구, 강의, 봉사 등 평가영역에 대한 비중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확산되리라고 본다”며 “교수마다 가진 장점이 다른 상황에서 교수업적평가시 선택의 폭을 넓히면 교수 개개인의 특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교수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88.3%가 ‘평가 기준을 전반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교수업적평가가 대학경쟁력 제고를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의 특성과 학문영역의 특성을 반영한 평가모델을 개발하고 교수 개인의 선택권 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희대는 지난 1999년부터 교수업적평가를 가·나·다 군으로 분리, 영역별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해왔다. 가군이 교육, 연구, 봉사를 균형 있게 배분한 트랙이라면, 나군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 연구능력이 떨어지는 교수들이 선택하고 있다. 다만 가군에 속한 교수들이 학기당 책임강의시수가 9시간인 반면, 나군은 12시간이다. 다군은 연구에 집중하는 교수들이 선택한다. 강의시수가 6시간 이하인 반면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 비중이 높다.
가군은 교육, 연구, 봉사의 비중을 각각 20~40%, 40~60%, 20~40%로 두고, 이를 합쳐 100%가 되도록 교수가 조정할 수 있게 했다. 나군은 교육이 60~80%인 반면, 연구는 10~30%로 상대적으로 연구영역에 대한 비중이 낮다. 반대로 연구중심인 다군은 교육이 10~20%, 연구가 70~80%다.
경희대는 지난 3월부터 ‘라’군을 새로 신설, 정교수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적어도 1년에 국내 학술등재지 논문 1편이나 저서 1편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이효성 교무처장은 “정년을 보장받은 정교수가 되면 논문을 거의 안쓰는 사람이 있는데 ‘라’군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가대상인 교수들의 신뢰 얻어야=수원대도 5~6년 전부터 이 같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반영역과 연구영역으로 나눠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 일반영역의 경우 교육이 50%, 연구가 30%다. 연구영역은 교육이 20%, 연구가 60%다. 정찬교 수원대 교무처장은 “5~6년 전 교수들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 교수평가제도를 만들었다”며 “시행 이후에도 계속 교수들의 의견을 듣고 수정, 보완해 1~2년 전부터는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평가 트랙을 표준, 교육, 연구로 나눈 삼육대는 책임시수 기준 12시간을 두고, 연구영역을 선택할 때 강의시수 감면과 연구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있다. 표준영역의 경우, 연구와 교육, 봉사의 평가 비중이 각각 30%, 45%, 25%였다. 교육영역은 교육이 50, 연구가 30, 봉사가 20이었다. 연구영역은 교육 35, 연구 50, 봉사 15다. 이기갑 교무처장은 “2년 전부터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며 “연구 영역을 선택한 교수들의 경우 강의시수를 2시간 정도 빼주고 성과에 따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하대도 가군과 나군으로 나눠 평가를 하지만 연구의욕이 높은 신임교수들은 가군을 적용하고 있다. 2005년부터 제도를 시행하면서 2002년 이후 채용된 교수들은 가군에 속하도록 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 가군의 경우 년간 강의시수가 12시간인 반면, 나군은 15시간이다. 특히 2005년 제도시행 당시 전공별로 가군과 나군을 선택하도록 한 뒤, 이후 연구에 의욕을 가진 교수들은 나군에서 가군으로 옮길 수 있게 했다. 대신 가군에서 나군으로의 조정은 금지해 연구력 증대를 꾀하고 있다. 교원인사팀 김창용 과장은 “연구역량 강화차원에서 신임교원들에게는 연구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객관적 잣대와 분야별 특성 고려해야=이런 ‘선택형’ 교수평가제도는 교수 개개인의 특성을 잘 살려 대학 경쟁력 제고에 순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평가기준이 세밀하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명지대의 경우, 지난해까지 일반, 교육, 연구 영역으로 나눠 평가 트랙을 운영해오다 올해부터 교육과 연구의 비중을 균등하게 두는 평가제도로 일원화 했다. 대형 연구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교수 외에는 모두 연구 영역을 택하기를 꺼려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 졌기 때문이다. 권철안 교무처장은 “연구중심이나 교육중심의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어서 나타난 문제”라며 “평가기준을 잘 다듬은 이후 다시 선택형 평가제도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에 있어서도 학문별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같은 노력을 투자해도 논문 발간 빈도에 분야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명지대의 경우는 이 부분에 대해선 세밀한 제도를 만들었다. 이 대학 교무처에 따르면 이공계의 경우, A·B·C그룹으로 나눠 생물, 신소재, 물리, 화학 등 비교적 논문 발간 빈도가 높은 학문분야는 A그룹으로 편성해 5년간 단독저자 SCI급 논문 2편(단독저자) 정도를 내게 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논문 발간 빈도가 낮은 B그룹은 1.5편, C그룹은 1편을 기준으로 한다.
경희대, 인하대 등도 학문영역별 가중치를 달리 적용하고 있었다. 이는 선택형 교수업적평가제도의 성패가 교수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학문영역별 특성을 잘 반영해야 교수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단 얘기다. 정찬교 수원대 교무처장은 "교수업적평가제도를 마련할 때 교수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며 "정량화된 잣대를 세우는 일과 분야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