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대학들은 캠퍼스 환경을 어지럽히는 각종 게시물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별도의 관리규약을 제정해 무분별한 게시물 부착을 방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의 캠퍼스 이용규정, 고려대의 홍보물 게시 자치규약, 서강대의 게시물 자진철거 운동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게시물 관리규약이 마련된 대학들도 세부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탓에 각종 포스터와 현수막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현실. 이에 비해 대학 차원의 중장기 목표로 ‘그린 캠퍼스’를 전면에 내세운 연세대는 제대로 된 게시물 관리규약 자체가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시물 관리규약 미비.. 관리 ‘역부족’
연세대의 현행 게시물 관리규약은 포스터·현수막 등의 규격만을 제한하고 있다. 여타 대학들의 관리규약이 단체명, 연락처, 게시기간 명시를 의무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세대 학생지원부 관계자는 “현재의 관리규약은 80년대 마련된 것으로 ‘사문화’ 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단체명, 연락처, 게시기간 등에 관련된 구체적 규약은 없다. 다만 학생지원부의 검인 과정을 거쳐 포스터는 20개 이하, 현수막은 1개만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도 학생들이 부착하는 게시물은 검인을 받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행사기간이 지난 게시물의 철거를 맡고 있는 관리과도 게시물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인력 부족. 관리과 관계자는 “캠퍼스 전체 게시물을 관리하는 업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은 관리1과장 한 명 뿐”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학내 동아리·자치단체를 비롯해 사설학원·외부기업 등의 홍보물이 넘쳐난 개강 후 2주간은 손 댈 엄두조차 못 낼 형편이다. 이 관계자는 “건물 관리 담당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타 부서 직원들도 1주에 한번씩 합동으로 게시물 철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동아리 홍보나 각종 행사 안내를 위해 부착한 게시물이 행사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일률적으로 철거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교측의 철거 시간대를 피해 게시물을 부착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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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양로 변에 설치된 게시판 뒤면에 수없이 붙였다 떼어낸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한명섭 기자 |
게시판과 현수막 거치대의 부족도 불만 사항이다. 연세대 교내의 게시판은 간이게시판을 포함해 두 곳, 현수막 거치대는 한 군데밖에 없다. ‘현수막 없애기’ 운동을 벌이면서 대부분의 현수막 거치대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나무에 현수막을 매다는 것이 미관상으로나 환경 보호 측면에서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게시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게시물을 게재하는 측과 검인·관리하는 대학 본부 간의 숨바꼭질은 현재진행형이다. 현 상황에 걸맞은 관리규약이 미비한 데다 학생들과의 협의과정도 전무한 탓에 캠퍼스 게시물 관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통합관리, 대안매체로 ‘그린 캠퍼스’ 만들어야
캠퍼스 내 게시물에 대한 통합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그린 캠퍼스’를 표방한 연세대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게시물에 대한 검인절차는 학생지원부에서, 철거를 포함한 제반 관리는 관리1과에서 각각 나눠 맡음에 따라 효율적 관리가 어렵다.
게시물 관리를 담당한 학생지원부와 관리 1과의 주장이 다르다. 관리 1과에서는 “관리규약이 마련돼 있으며, 총학생회측과의 협의가 있었다”고 했으나, 학생지원부에서는 “규약은 사문화 됐으며, 게시물 관리에 관해 학생측과의 협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게시물 통합관리의 필요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학생지원부 관계자는 “캠퍼스 환경 개선의 일환으로 ‘현수막 없애기’ 운동을 벌일 때, 멀티미디어 도입을 통한 게시 문화의 변화를 검토했는데 흐지부지된 것이 아쉽다”고 회고했다. 무분별한 게시 문화를 막기 위한 인터넷 키오스크·LCD·LED 전광판 등 대안매체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인권 정보통신처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게시물을 대신해나갈 수 있는 멀티미디어 인프라의 구축을 강조했다. 그는 “멀티미디어 게재 내용에 대한 저작권, 지나친 상업성 논란, 콘텐츠 제작 등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전자장비 도입이 캠퍼스 환경 개선에 일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처장은 “대학 입장에서도 새롭고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도입하는 의의가 있다”면서 “현재의 게시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구성원에게 다양한 소통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체’보다는 ‘다양화’의 관점에서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란 설명이다.
게시공간 확충, 관리규약 마련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되풀이하기보다 대안매체 확보로 인한 게시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적절한 통합관리가 필요하다.
연세대는 현재 인터넷 키오스크·PDP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학교 차원의 콘텐츠 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 처장은 “멀티미디어를 단과대학 별로 각각 외부 업체로부터 협찬받은 탓에 정보통신처의 관리가 불가능한 형편”이라며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첨단기기에 일상성 담아내는 ‘디지로그’ 필요
연세대 구성원들은 현재의 게시 문화가 지닌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멀티미디어 시스템 구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들은 또 ‘일상적·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콘텐츠를 확보해야 게시 문화를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 첨단기기에 아날로그 문화를 담아내는 ‘디지로그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필요하다는 것.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소통에 대한 고민이 전제될 때, 비로소 대안적인 멀티미디어 게시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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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회관 앞에 설치된 게시판./한명섭 기자 |
정 처장은 “현수막·포스터·자보 등은 부작용도 있지만, 학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매개체”라며 “향후 인터넷 키오스크·PDP·LED·LCD 전광판의 콘텐츠 제작을 대학 본부·학내 언론·학생 자치단체·동문회·외부 업체 등에 적절히 배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캠퍼스 환경 훼손과 게시물 관리의 비효율성을 최대한 줄이고, 다양한 의사소통의 경로를 개발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문화를 생산한다는 취지다. 정 처장은 “콘텐츠를 다양한 주체에게 분담시켜 일상적·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가운데, 게시 문화도 자연스럽게 디지털 멀티미디어로 흡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유미 씨는 “디지털화만으로 학생들이 직접 홍보물을 만들고, 캠퍼스를 거닐며 느끼는 아날로그적 분위기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학교측 공지나 기업 광고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직접 참여하는 UCC 등의 콘텐츠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97학번인 또 다른 문과대학생도 “핸드폰이 없던 대학시절, 신촌 거리의 메모 꽂이 보드판을 종종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며 “디지털 기기에 이 같은 아날로그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정감 있으면서도 훌륭한 게시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