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밝히는 해외석학 영입의 주목적은 교육의 국제화와 연구력 증대다. 장기적으로는 대학의 국제적 인지도를 제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있다.
◆특강부터 초빙까지... 우수 해외교원 확보 박차
고려대는 2학기부터 해외석학 18명을 초빙, 고려대 교수들과 공동으로 강의하는 정규강좌를 개설한다. 고려대 교수들이 해외대학에서 유학할 당시의 지도교수를 불러들여 제자와 함께 공동강의를 맡긴다는 내용이다. 초빙교수는 국제적 학회 회장, 저명 학술지 편집장 등 국제적으로 학술적 권위를 인정받는 ‘석학’으로 제한했다.
박노형 교무처장은 “우리 대학 교수들 중 유학 당시 훌륭한 교수들에게 지도받은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이들을 초청해 정규강좌를 개설하면 유익할 것이라 판단했다”면서 “다만 초청대상은 해당 학문분야에서 석학으로 인정받는 분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로저 콘버그 스탠퍼드대 교수를 석학교수로 영입한 건국대는 지난 15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레스 알페로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센터장을 추가로 영입했다.
알페로프 교수가 수장으로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센터(SPSC)는 러시아 내 40여개 연구소를 총괄하고 있다. SPSC와의 MOU도 체결한 건국대는 해외 연구소들과의 공동연구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연구력 증대와 국제적 인지도 제고를 노리고 있다.
연세대는 영어전용단과대학 언더우드 국제대학(이하 UIC)의 주도로 5명의 해외석학을 확보한 상태. UIC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 쿠르트 뷔트리히 스위스 연방과학기술원 교수 △도널드 존스턴 전 OECD 사무총장 △데이비드 브래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부소장 등 5명을 석좌교수로 초빙했다.
13일 노벨 화학상 수상자 헤럴드 크로토 교수의 특강을 진행한 연세대는 작년에 이어 올해 9월에도 ‘연세 노벨포럼’을 기획, 노벨상 수상자를 대거 초청해 특강 주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박진배 연세대 연구처장은 “작년 1회 포럼에 1,000여명이 참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작년 수준과 규모에 준하는 해외 석학들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원장 진덕규)도 초빙 석좌교수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 △노벨 화학상 수상자 로버트 그럽스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 △조셀린 벨 버넬 옥스퍼드대 교수 등을 임명했다. 여기에 ‘역사의 종언’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 등의 추가 영입에도 나서고 있다.
◆해외석학 영입비용 높아... 부대비용까지 부담
해외석학 영입에 소요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고려대는 해외 석학 한 명을 초빙하는 데 강의료 1만 달러(한화 약 929만원)에 항공료·숙식비 등을 포함해 약 1,20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해외석학은 약 1개월 정도만 공동강의에 참여할 예정이다. 17명에서 18명 정도의 석학을 초빙한다고 가정하면, 최소 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얘기다.
건국대는 로저 콘버그 교수, 조레스 알페로프 교수와 각각 3년,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건국대 관계자는 “교내 교수들 중 고액 연봉을 받는 교수들의 수준과 비슷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학에서 교수의 상위 연봉은 약 1억 원. 2명의 석학교수를 영입하는 데 최소 5억 원이 든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모종린 연세대 UIC 학장은 “외국인 석학을 영입하려면 항공료와 이사비용·주거비용 등을 제공하고, 직접 찾아가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자세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해외 석학은 ‘급’에 따라 그 비용이 천차만별”이라며 “특강이나 학술회의 참석자에게도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의 왕복항공료와 오성급 이상 호텔의 숙박시설이 제공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벨상 수상자의 경우 특강료로 통상 5천달러에서 1만달러 정도를 준다”고 설명했다.
상당한 돈과 노력을 투입해야 저명한 석학을 모셔올 수 있다는 것. 박진배 연세대 연구처장은 “해외 석학 특강·초빙이 ‘고비용 저효율’이란 비판도 있지만, 장기적 투자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과도기적 상황을 벗어나 국내 대학들의 국제 인지도가 높아지고 해외 네트워크가 정착되면 비용 문제나 초청 형태도 자연스레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평가 대비용? “외국인 학생 유치가 먼저” 지적도
대학들은 해외 석학 영입을 국제화 교육·연구력 증대·정보 교환 등 다방면의 효과를 위한 포석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특히 세계대학평가 중 중요지표로 활용되는 △동료교수 평가(peer review) △외국인 교원 비율에서 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권혁상 KAIST 홍보국제처장은 “‘더 타임스’ 평가가 주목적은 아니겠지만, 해외석학 영입으로 인해 국제 인지도와 외국인 교수 비율 상승에는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배 연세대 연구처장도 “해외석학 모시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국내 이공계 대학들이 SCI 등 정량평가에서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음에도 불구, 국제 네트워크가 취약해 저평가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작년 ‘연세 노벨포럼’에 참가한 강연자들에게 따로 연구실적을 브리핑하고, 그간의 연구성과를 책자와 팜플렛 등을 통해 알리려고 노력했다”면서 “만찬 시간에도 계속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데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연세 화학노벨포럼을 기획·진행한 김동호 교수(화학)도 “비영어권에다 국가 브랜드 네임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 역량에 걸맞은 평가를 못 받은 측면이 있었다”면서 “국제화의 큰 틀 안에서 (해외석학 모시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석학 영입이 국제적 인지도 제고와 네트워크 구축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진정한 국제화 교육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외국인 학생 비율 제고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우현 숭실대 교수(경제학)는 “각 대학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해외석학을 모셔오는 가장 큰 이유가 국제화인데, 사실 국제화는 해외석학만 영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외국인 학생 유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해외 석학이 와도 국제화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일부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한국 학생들이 대다수일 때는 한국말을 섞어서 하는 ‘구색 맞추기식 영어강의’가 되고 있다”며 “한 클래스에 적어도 10% 정도의 외국인 학생이 있어야 영어강의가 온전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하영·김봉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