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픔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다. 좌절도 있었지만 희망도 만들어 냈다.”(장임원 중앙대 명예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민교협 20년사 2007>와 <걸어가면 길이 된다-민교협과 나>를 펴냈다. 지난 20년간 째깍였던 민교협의 시간을 회원들의 육성을 통해 되짚어보면서 새로운 20년을 여는 마음을 담은 것. 애틋한 개인적 사연에서부터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교육 민주화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1987년 86학번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은 내 과목을 듣고 있었고 그는 최루탄에 맞아 민주항쟁의 불꽃으로 산화했다. 이한열의 죽음은 아직 깨지지 않았던 나를 완전히 깨뜨렸다.”
<걸어가면 길이 된다>에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민교협이 창립된 1987년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김승환 충북대 교수(국문)는 민주화 선언에 참여했다가, 학장실에 불려가 서명 번복을 종용받던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아내 뱃 속의 아기가 떠오른다. 한국사회에서 의대교수가 아닌 한, 재임용탈락이란 곧 실업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전임강사로 임용된지 한달 만에 김 교수는 실업자의 길을 선택한다.
16·17기 공동의장을 지낸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는 김대중 정부 시절, BK21 집회현장에서 아버지에게 허리춤을 잡힌 일화를 털어놨다. “교수됐다고 마음 놓고 있었더니 또 잡혀 가려고 데모하냐”며 야단치던 손 교수의 아버지는 “안심하고 들어가시라”는 경찰과 국정원 관계자들의 말에 집으로 돌아가셨다.
지난 역사 동안 민교협의 ‘발전적 해체’를 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는 “민교협은 ‘6월민주항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정황에서 탄생한 매우 특별한 지식인 조직이기 때문에 자연사하기 전에 스스로 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민교협의 사회적 효용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교협에서 활동할 주체들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이것이 현재 민교협의 기본모순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민교협 활동이 다소 침체되었다고 해서 민교협의 성과와 가치까지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
박상환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는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절실하며, 이제는 비정규직 교수 문제의 해결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그들에 비해 기득권에 속한 교수들의 정년 단축과 같은 자기 제한도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민교협 20년사>에는 그간의 민교협의 행적을 촘촘히 기록했으며, 사진으로 보는 20년사와 함께 김정환 시인이 보내온 200자 원고지 837장 분량의 장문의 축시 중 일부분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