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이번 여름방학을 가장 바쁘게 보낸 이를 꼽으라면 장병옥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중동연구소장·사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장 교수는 지난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피랍 사태가 발생한 이후 매일 수많은 국내외 언론에서 자문을 구해와 휴가 조차 반납했다. 국내에서 이슬람권에 대한 학문을 다루는 대학은 4곳에 불과한데다 한국외대가 가장 역사가 깊어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이 도움을 청해 온 것. 장 교수를 비롯해 이슬람권 정치를 연구한 교수 3~4명이 자문에 나서느라 개인 논문을 쓸 여유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갑작스런 주목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장 교수는 이런 분위기가 이슬람권 연구자들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매년 4개 대학에서 모두 200여명 가까운 전공 학생들이 배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는 이러한 인적자원을 활용하지 못해 이번 사태에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전문가를 키우지 않아 이젠 이 분야의 맥이 끊길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국가와 관련한 분야에만 지원을 집중할 게 아니라 제3국가에 대한 전문가 양성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일 한국외대 이란어학과장실에서 장 교수를 만나 아프간 피랍사태 발생 이후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프간 피랍사태로 휴가도 반납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피랍사태가 정부에 의해 확인된 지난달 21일. 한참 청계산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갑작스럽게 모 방송사의 연락을 받았다. 피랍과 관련, 속보를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산에서 내려와 집에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옷만 갈아입고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렵사리 방송을 마쳤고 이후에도 방송사를 순회하듯 다녔다. 알자지라, 아리랑 방송 등 해외 전파를 위한 방송과 신문의 인터뷰까지 쇄도했다. 어느 방송사는 일당을 줄테니 오전부터 밤 12시까지 상주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아 거절했다. 최근에는 모 방송사가 피랍사태와 관련한 심야토론을 마련하고 패널로 초대했었는데 인질 가족들의 반대로 방송이 무산된 바 있다.
▲장 교수가 주장한 "이슬람 세계를 움직여야 한다"는 전략이 피랍사태 해결에 있어 어느 정도 효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향후 추이를 어떻게 보는지.
일단 한국정부가 이슬람국가들을 통해 물밑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는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탈레반 측이 인도적인 목적임을 내세워 인질 2명을 석방한 상황이라 앞으로는 쉽지 않을 모양새다. 장기화도 우려된다. 특히 탈레반 내 강경파가 협상 난항을 문제 삼아 추가 살인을 저지를 우려가 있는 게 문제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10월이면 이슬람국가의 라마단 기간이라는 것이다. 라마단은 해가 뜨고 지기 전까지 일체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 고행을 통해 아프고 배고픈 자의 고통을 나눠 갖는다는 종교적 의미를 담은 이슬람교인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이슬람 국가에서는 종종 포로 석방 등의 인도적 행동을 취한다. 탈레반이 내부의 반발을 누르고 대의명분을 얻어 일부 포로를 석방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물론 한국정부가 철군일자를 좀 더 앞당기거나 드러나지 않게 아프간정부와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물밑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사태 이후 이슬람국가 전문가의 부재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피랍사태 이후 정부의 초기 대응 문제가 도마에 오르지 않았나. 외교부뿐만 아니라 국가안보회의나 어떤 정부 산하기관에도 이슬람 국가에 대한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에는 20~30년을 교수 자리가 없어 강사만 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 학생들은 40~50대가 대다수인 강사진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다. 자비를 주고 위험지역인 이슬람 국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아 온 전문 인력들이 먹고 사는데 급급해 강사를 하면서 연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200여명의 졸업생들 중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경우는 10~20%에 불과하다. 이들 또한 그다지 안정적인 여건은 아니다. 정부 내에 전문가라 할 만한 이들이 없지 않지만 분쟁지역에 파견되면 본인의 입신이나 가족의 교육 문제가 걸려 알려지는 것을 오히려 꺼려하는 상황이다. 강대국 위주의 외교만 하다 보니 제3세계에 대한 연구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중동 전문가만 천 여 명이다. 우리나라는 학회 등록된 수는 200여명이지만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는 40명 정도에 그친다.
▲피랍 사태로 전문가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면 분위기도 바뀌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지난 73년 오일쇼크를 비롯해 9.11사태, 고 김선일씨 살해사건 등도 겪었다. 하지만 사건이 끝나면 관심도 함께 사라진다. 이번 피랍사건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최근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정부가 추진하는 해외지역연구 지원 계획에 희망을 걸고 있다. 대상에 선정되면 매년 5~8억원씩 10년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여기에 사활을 걸고 중동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밤낮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오는 24일 접수 마감이어서 이번 방학동안 계속 준비했어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피랍사태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일시적으로 유리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저도 한국외대 이란어과 1회 입학생인데 당시 교대를 다니다 특수어학과에 장학금이 지원되면서 이 분야로 진로를 바꿨었다. 학생들에 대한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이 분야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전문 인력들에 대해 지원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