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교육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이 에너지만 잘 이용한다면 세계 10위도 아닌 1,2위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교육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 꿈입니다”
삼보컴퓨터 설립자로서 ‘벤처 신화’를 창조했던 이용태 박사(74.삼보컴퓨터 전 회장)가 가정교육 전도사로 돌아왔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보컴퓨터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 그가 몰입하고 있는 일이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퇴계학연구원에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직접 강단에도 설 계획이다. 이번 학기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개설된 인성교육지도자양성과정의 강사로 나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교육을 설파한다.
우리나라 IT산업을 이끌어온 인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변신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IT산업을 개척할 사람이 필요했을 때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며 “인성교육양성지도자 과정에서 배출된 선생님들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제대로 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 박사는 벤처 사업가이기 이전에 교육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통계물리학 박사를 취득한 이공계 출신으로 이화여대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현재 숙명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교육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재계가 주도하는 대안학교 설립도 추진한 바 있다. '이지흠'이라는 필명으로 학원가 수학계를 평정한 적도 있다.
이 박사는 “산업화시대에는 자원과 시장, 돈, 기술 등이 경쟁의 원천이 됐지만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지식이 힘의 원천이며 이는 교육에서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해야 할 정책 중 최우선순위는 바로 교육”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교육은 지식 습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교육. 핵가족사회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은 더없이 중요한 문제라는 설명이다. 최근 발간한 “이야기로 키우는 인성교육법”은 그런 취지에서 저술한 책이다. 지난 3일 명륜3가에 위치한 퇴계학연구원에서 이 박사를 만나 그의 근황과 교육철학을 들어봤다.
▲기업인에서 교육자로 돌아온 느낌은.
원래 교육자의 길을 걷고자 했는데 우연히 IT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상황이라 누군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기업이 그 분야를 이끌어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기까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시간적 여유가 생겨 교육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울대 나와서 하버드에서 박사하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상태에서도 인격적 결함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일수록 인성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특히 핵가족화 되면서 많은 세대가 함께 생활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늦었지만 내 손자들에게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책을 쓰게 됐고 인성교육 지도자 과정까지 추진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을 가정교육의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나의 꿈이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쉬움도 많을 것 같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1990년 전후로 기억한다.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이 광양제철소 건설을 끝내고 철강산업에서 중추역할을 다 했으니 지식산업에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매년 1조원씩 이 부분에 투입하겠다며 이 일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철강 생산은 충족됐으니 정보화 사회를 맞아 포철이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박 회장이 피력했다. 당시 나는 삼보컴퓨터의 회장, 데이콤의 사장이었다. 하드웨어와 통신이 내 손안에 있었기 때문에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만 보태면 대한민국이 정보화 부분에서 크게 발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문 직책을 맡고 나서 미국서 빌게이츠 등 기라성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포철의 투자계획을 제시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하지만 결국 당시 정치바람이 불어 박 회장이 여당의장이 되면서 이 프로젝트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바람에 중단됐다. 박 회장을 대신해 일을 추진한 직원들은 투자에 대한 결과물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만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자가 미뤄지더니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유야무야된 것이다. 뒤늦게 박 회장이 “직원들의 식견이 부족해 아까운 것을 놓쳤다”며 아쉬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가 제일 후회스럽다. 당시 내가 박 회장을 직접 찾아가 일을 진행했다면 우리나라가 정보통신사업에서 엄청나게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박사님은 수학의 달인으로, 이름난 수학 강사인 적도 있는데 퇴계학연구원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인가.
이퇴계 선생의 종손이 내 장인이다. 퇴계학 연구원은 고 이동준 회장(옛 인천제철 창업자)이 설립했는데 퇴계학 연구와 국제화에 큰 역할을 했다. 저는 퇴계선생과의 인연도 있지만 경제적 지원을 부탁받고 이사장까지 맡게 됐다. 퇴계 선생의 사상의 핵심은 유학이라는 게 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 공자, 맹자 시대의 원시 유학을 체계화 한 것이 주희(주자)이고 그 이후 퇴계 선생이 주자의 학문을 더 심화시킨 대학자다. 우리나라 유학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분으로서 생존 당시에 이미 임금부터 서민까지 최고의 학자, 최고의 인격자로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학문적 업적과 교육·정치에 미친 영향 및 행적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숙명학원 이사장으로서 최근 숙명여대의 비약적인 발전상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경숙 총장이 다 해놓은 일이고 나는 옆에서 박수만 쳤을 뿐이다. 10년 동안 1000억원 상당을 모금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숙명여대의 리더십 교육은 바로 인성교육이다. 고전 50권을 읽어야 하고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설계하고 대학 졸업까지 모든 교육과정에서 리더십 교육을 체득한다. 요즘 기업에서는 채용시 시험만 보고 끝나는 곳은 없다. 2차부터는 집중 인터뷰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숙명여대 학생들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이 총장에게는 후임 양성을 당부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많은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다음 사람이 이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리 교육이 너무 기능주의쪽으로 치우친 것 같다. 그야말로 한국사회가 사람을 키우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기는데 어떻게 보는지.
교육에너지가 많은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한국이 교육에너지는 세계 최고이며 그런 의미에서 성장 잠재력은 세계 최고이다. 문제는 이 교육 에너지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키는 엔진의 결함이다. 연료는 많이 공급하는데 엔진이 나빠 에너지가 모두 옆으로 새는 격이다. 한국이 앞으로 해야 할 정책 최우선순위가 교육엔진을 수습하는 일이다. 교육의 원래 목표는 사회에 유용한 인재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인성을 갖춘 인재만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그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핵가족화와 함께 학교와 학원만 오가면서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다. 학부모들이 그러한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할 때다.
<이용태 이사장은…>
경상북도 영덕 출신으로 서울대를 졸업, 미국 유타대에서 통계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고 1980년 삼보컴퓨터를 설립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숙명학원 이사장, 퇴계학 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대담:본지 이인원 회장 ·사진 한명섭 기자 ·정리 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