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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시행 2개월, 대학들 ‘눈치보기’
테이블 마련 안 돼. 기약 없는 비정규 논의

“현재로선 나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조용합니다.”

비정규직법 시행 2개월. 대학 내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한정이 전국대학노조 정책국장의 대답이다. 한 정책국장은 “비정규직법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2009년 7월이 되면 문제가 불거지겠지만, 지금으로선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한 대학 노조 간부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대학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랜드 사태에서 보듯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화될까를 우려,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대학이 비정규직 법 시행 이전 대책을 미리미리 마련해 당분간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전망이다.



협상의지 없는 대학, 적극 못 나서는 노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월 초 인력개발팀과 기획예산팀, 노조 지부장 등이 참여한 비정규직심사평가위원회를 설치한 고려대는 두 달이 지나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이상조 고려대노조 사무국장은 “실무 태스크포스팀에서 학교와 두 번 정도 학교와 만났지만 진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 몇 명이나 논의 테이블에 올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이정석 인력개발팀장은 “고려대는 비정규직이 400명 정도나 된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 “태스크포스팀을 통해 거듭 심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논의에 진척이 없는 것은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수열 세종대 노조 사무국장은 “다른 학교는 어떻게 하는지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그는 “9월 중에 인사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해 비정규직 문제를 처리하기로 했지만, 정규직의 인사제도를 논의할 때 부가적으로 이야기하자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계원 서울여대 노조지부장은 “학교가 정규직화를 꺼리는게 당연한 것 아니겠냐”면서 “서울여대는 비정규직이 100여명 정도인데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이 많아 건드리기가 껄끄럽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중규직’ 문제도 걸려 있다. 서울여대 하반기 임금협상 논의 테이블에 오를 비정규직은 조교를 제외하고 15명 정도인데 학교가 59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임금을 낮게 책정한 이른바 ‘중규직’이어서 이에 대한 논의는 임금협상 차원에서만 진행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시행 이전, 대부분 법망 피할 방법 마련


비정규직 논의가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에 대학이 이미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주최로 지난 3월 대전에서 열린 세미나 자료 <학교의 노무문제와 효과적 관리방안>에는 비정규직법에 위배되지 않는 테두리에서 인력을 운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등이 수록됐다.


일례로 “사용사업주가 2차 면접을 보는 것은 파견의 원리에 맞지 않다. 따라서 ‘면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등 학교가 범할 수 있는 사례도 소개됐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 5월 전문가들로 구성한 ‘비정규정책 연구협의회’를 발족해 한 달 동안 전문대학 내 비정규직 실태를 조사하고 법률해석을 완료했다.


연구협의회가 지난 7월 연 ‘정책연구결가발표회’에서는 “우선 일반 행정직원 중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합리적 차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업무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정규직은 임금적 성격이 높은 복리 후생수당까지 포함하는 연봉제를, 기간제 근로자는 따로 객관적 지표를 만들라”는 등 실제적인 업무지침이 실려 있다.


조교에 대해서는 “별도 직군으로 조교직군을 둔다면 차별적 처우 비교대상군이 조교로 한정될 수 있다. 행정업무와 조교 업무를 구분하라”, 학교기업 직원에 대해서는 “일반직원과 별도 직군으로 분리하라”는 등 차별금지 조항을 위반하지 않는 방법들이 제시됐다.



비정규직 시행 전에는 큰일날 줄 알았지만...대학들 ‘차분’


사학진흥재단의 교재에서 비정규직 노무관리부분을 맡은 ‘ㄱ’ 노무사는 “대학들이 재정적인 한계 때문에 비정규직 모두를 정규직화 하기를 껄끄러워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관계자들도 비정규직법이 나왔을 때는 마치 대학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비정규직법에 허술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은 많이 차분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금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법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법이 아니다. 법을 새로 하나 만들지 않는 이상 중규직을 비롯해 아웃소싱의 횡행은 막을 수가 없다”며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다음 입법에서 조금씩 진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학진흥재단은 “비정규직법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이런 사례들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책을 냈다. 모순된 사례를 검토해 법의 취지에 맞게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재단 관계자는 “법무부를 비롯해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설명회를 열거나 하지 않는다”면서 이와 같은 비정규직법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정이 대학노조 사무국장은 “법이 바뀌었다고 ‘월급 적게 받고 고용불안 하니까 내가 정규직 시켜주겠다’고 할 착한 사용자는 없다”며 “비정규직 문제는 ‘울어야 젖을 준다’는 속담처럼 노조가 적극 나서서 요구해야 듣는 척을 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나마 노조가 있는 학교는 고민이라도 하겠지만, 노동조합 없는 곳은 그야말로 아무 소리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지적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내년 봄 단체협상이나 노사 간 충돌이 있어야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김기중 기자 (gizoong@unn.net) | 입력 : 07-09-18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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