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딱딱한 직함을 벗어던지고 누리꾼과 호흡하고 있다. 블로그 열풍에 맞춰 블로그를 개설하는 교수가 늘고 있는 것. 이들의 블로그는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때로는 수준 높은 자료 저장소로, 때로는 논쟁의 장소로 활용된다. 몇몇 교수의 블로그는 하루에도 1000여명이 넘는 누리꾼이 방문, 어지간한 연예인보다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소리에서, 사진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개성!

김벌래 홍익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김벌래의 확 까발린 소리 인생’(http://blog.naver.com/38audio)은 이색적인 블로그다. 광고음향 1인자의 블로그답게 병뚜껑 따는 소리, 라면 먹는 소리 등이 누리꾼의 발목을 잡는다.
“술마시는 건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았다. 나는 똥창이 맞는 내 동무들과 참 많은 술을 마셔온 것 같다”며 친구들과의 술 이력을 늘어놓는 글에서는 사람냄새가 묻어난다. “피가 마르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밤 새워 노력해야 했다”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고자 반복한 노동의 고됨을 고백한 글, “직업은 돈벌이가 아니라 일”이라고 강조한 글 등에서는 정직한 땀방울이 엿보인다.
그에게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블로그를 수업에 활용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수업은 수업이고 놀이는 놀이”라고 딱 잘라 말하고 “블로그를 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어 좋다”며 유쾌하게 웃는다.
같은 학교 안상수 시각디자인과 교수의 블로그(http://www.ssahn.com/) 역시 개성이 넘쳐난다. 사람들에게 한쪽 눈을 가리게 하고 찍은 ‘one.eye’ 사진이 인기인데, 무려 2000장이 넘는다.
2004년 3월부터 계속해 포스팅을 이어온 그의 사진은 이미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홍익대 주변 상수동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서도 안 교수만의 감성이 배어난다.
수 많은 방문자 북적북적, 연예인 못잖은 인기도

전북 진안 ‘산내마을’ 시골집에 둥지를 튼 도시뜨기의 시골생활 적응기를 올리는 고홍석 전북대 생물자원시스템공학부 교수의 ‘산내마을 새벽편지’(http://kr.blog.yahoo.com/goh552003)에 매일 들르는 누리꾼은 1000여명이 넘는다.
2003년 9월에 개설해 어느새 4년이 넘은 고 교수의 블로그를 방문한 누리꾼은 지금까지 120여만명. 정기구독자는 580여명이고 댓글만 2만여개를 넘는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과 지역에 대한 ‘알림’의 역할을 자임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그는 자신의 블로깅에 대해 “너무 많은 시간이 투입되고, 하루라도 블로그를 열어보지 않으면 허전한 ‘블로그폐인’이 되는 것에 회의를 느껴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한다.
온라인이지만 오해와 편견을 통한 소통의 왜곡도 힘든 부분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블로깅에 대해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객’ 진중권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의 블로그 ‘미라쿨릭스’(http://blog.daum.net/miraculix) 역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블로그 중 하나다. 텔레비전 등 각종 매체에서 널리 알려진 진 교수의 언행이 진 교수의 블로그에서 또 다시 점화, 진 교수를 비난하는 사람과 옹호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블로그가 시끌거린다.
특히 지난 8월 MBC ‘100분 토론’에서 심형래 감독의 ‘디 워’를 정면으로 비난한 후 방문객이 대거 늘었다. 영화의 허점을 하나하나 짚어낸 글에는 1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꼭지가 돌아서’ 비평을 하고 있다”거나, 디 워를 가리켜 “비평할 가치가 없는 영화”라며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으로 비난한 까닭에 블로그가 한동안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교수는 ‘전문가’···유용한 콘텐츠 인기

각 분야 전문가인 교수가 올린 글과 사진은 유용한 정보로 각광을 받고 있다. 류영수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pimas)에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버마) 등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무려 600여장에 달한다.
스리랑카 쓰나미 사진 등은 사진의 미적 가치를 넘어 자료로서도 효용가치가 충분하다.
최정화 캘리포니아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블로그 ‘상항흰구름의 ‘영어로 배우는 삶의 지혜’’(http://kr.blog.yahoo.com/jh3choi)에는 다양한 영어 학습 자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얼을 위한 영어’ ‘영어단어은행’ ‘영어/교육’ ‘영어커뮤니케이션’ ‘영자신문스크랩’ ‘영어서당’ 등 유용한 자료가 가득하다. 지난 해 3월 개설한 블로그에는 이미 3만여 명이 넘는 누리꾼이 방문했다.
중국, 고구려 등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노희상 중앙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의 ‘역사와 삶’ 블로그(http://blog.joins.com/manchuria) 역시 누리꾼이 많이 찾는 블로그 중 하나다. 2004년 6월에 개설, 현재 2만 2000여명이 다녀갔다. 책을 출간할 때마다 블로그에 올려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교수 블로그 활성화하려면 생각부터 바뀌어야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블로그 ‘Das Ganze ist das Unwahre’(http://blog.paran.com/myungwoo)에는 노 교수의 논문을 비롯,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고문이나 에세이, 컬럼 등이 인기다.
노 교수는 2002년 홈페이지를 사용하다 블로그에 반해 2004년 12월에 블로그로 갈아탔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인맥이 늘었다”며 블로그의 효용을 높이 평가했다. 일 유학시절 알고 지내다 소식이 끊긴 사람이 10년 만에 블로그를 통해 연락을 해 놀라기도 했다고.
출판사에서도 노 교수의 글을 보고 책을 내자며 연락이 자주 온다고 한다. 그는 이를 가리켜 “블로그가 포트폴리오가 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홍보활동도 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학생들과의 유대’를 꼽았다. 블로그에 올린 소소한 글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묻어나 수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그는 “블로그에 쓴 간단한 에피소드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보고 학생들이 ‘노명우 교수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견해를 지닌 사람이구나’ 이해한다”며 “학생들이 직접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블로그에 상담하는 등 유대가 돈독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교수는 블로그를 모든 교수한테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블로그를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블로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억지로 글을 쓰면서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그 자체가 고역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블로그를 가리켜 “한마디로 ‘공유’의 도구”라며 “학생들, 누리꾼들과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면 이만큼 강력한 도구도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IT 컬럼리스트 김중태 씨는 “교수들의 경험이나 지식은 해당 분야 전문가 수준”이라며 “교수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는 일반인에 비해 가치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외국의 교수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발하게 나누는 ‘무료 지식봉사’ 활동과 비교할 때 국내 교수들의 참여는 여전히 저조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시간도 없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책임을 꺼리는 풍토 탓에 지금까지 교수들의 블로그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면서 “교수들의 블로그가 더 활성화 하려면 교수들이 이런 인식을 바꾸는 일이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수 아닌 블로거로서의 정체성 가져야”
‘파워블로거’ 민경배 경희 사이버대 NGO교수

“댓글 다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2년 전 블로그를 개설, 하루 방문자 2000여명을 기록하는 ‘파워블로거’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장(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http://www.min.or.kr/)은 블로그의 재미를 ‘댓글’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일간지·인터넷신문에 올렸던 기고문과 TV·라디오에 출연해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올리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블로거들과 네트워크를 쌓아가는 교류의 매력에 빠져 있다.
댓글 하나하나에 바쁜 시간을 쪼개 댓글을 다는 민 교수는 이러한 일을 귀찮은 일이 아니라 관심 있게 보고 글을 남겨준 다른 블로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일반 신문·TV·라디오에 비해 직접적인 강도가 약한 것은 본인도 잘 있다.
하지만 민 교수는 “블로그에는 일반 매체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도권 매체를 넘어서는 이른 바 ‘보완매체’인 셈이다.
민 교수는 “일일 방문자가 많은 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글 하나하나가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파워블로거가 되려면 방문자 숫자보다 콘텐츠의 전문성과 충성도 높은 방문자들의 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
RSS(Really Simple Syndication: 뉴스레터)를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블로거들의 숫자도 중요한 요소다.
그는 이와 관련 최근 늘어나는 교수들의 블로깅에 대해 “교수는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보니 높은 수준의 정보를 가진 심도 깊은 글이 강점”이라면서도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수평적이어야 한다.
지도·계몽하는 태도를 블로그에서까지 고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블로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나는 교수니까’ 하면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성의 있게 댓글을 달고, 디자인이나 메뉴구성, 명확한 유저 인터페이스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단순히 글만 올리는 것을 넘어 글과 관련 이미지를 찾아 올려 이해를 돕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를 가리켜 “교수로서의 정체성보다 블로거로서의 정체성이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