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자격루 복원 23년 매달린 남문현 교수
"20년 넘게 실패를 반복한 끝에 복원한 자격루입니다. 개인적인 감회는 뭐라 말할 수 없지요"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가 복원.공개된 21일 국립고궁박물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전기공학과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감회를 밝혔다.
이날 식장에 모습을 보인 역사학계의 거물들이 모두 자리를 양보한 주인공은 20년 넘게 자격루 복원에 매달려 온 남문현(65.자격루연구회 이사장. 문화재위원) 건국대 교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내년 2월 정년 퇴직을 앞둔 남 교수의 고별 강의가 예정된 날이었다. 남 교수는 행사 참석을 위해 고별 강의를 1주일 뒤로 미뤘다.
1984년 10월24일. 남 교수는 23년 전 자격루 연구를 시작한 날을 분명하게 기억했다.
"그날은 대한전기학회 학술회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학회에서 제 지도교수이신 레리 스타크 버클리대 교수를 초청했어요. 교수님을 뵈러 갔더니 '자격루를 복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인쇄활자가 유럽으로 전파된 경로를 연구하셨는데 활자 연구를 하다보니 자격루까지 알게 된 모양이었어요."
남 교수는 "지도교수가 시키니까 순진하게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저 '한 1년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1년이면 충분할 것으로 여겼던 자격루 복원을 위해 남 교수는 23년 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공대교수가 뭘 알았겠습니까. 천문학부터 과학사, 기술사까지 다 공부했습니다. 또 자격루 복원이라는 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인맥을 쌓아갔습니다"
금전적인 어려움도 컸다. 남 교수가 끌어 모은 복원팀은 1988년 자격루를 이용해 서울 올림픽의 개막을 알리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후원하겠다는 기업이 마음을 돌리는 바람에 빚만 잔뜩 졌다.
"한 2천만-3천만원 정도 빚을 졌습니다. 20년 전에 그 정도면 적은 돈이 아니지요. 집사람한테 혼도 많이 나고 심적인 부담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모인 사람들이 결국 자격루를 복원해냈어요. 저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 인연으로 공대출신이면서 문화재위원까지 하게 됐잖아요"
남 교수는 "자격루 복원도 인연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과기처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자격루 설계를 마친 것이 1998년이다. 그러나 막상 제작에 들어가려니 이번에도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에 손을 내밀었는데 하나 같이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자격루 복원을 진행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잖아요. 수의계약을 해야 하는데 공무원이 수의계약에 사인하는 건 목을 걸고 하는 일이에요"
2004년 12월 남 교수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한 공무원은 동료 문화재위원으로 얼마전까지 옆 자리에 앉아있던 유홍준 신임 문화재청장이었다.
"유 청장이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자격루 복원 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하지만 옆 자리에 앉은 인연이 아니었으면 유 청장도 쉽게 사인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격루 복원에는 기술적 어려움도 뒤따랐다. 그 가운데서도 남 교수를 괴롭힌 것은 2단 구조로 놓인 파수호(播水壺)였다.
자격루는 물을 저장하고 흘려보내는 3개의 대.중.소 파수호(播水壺)와 물을 받아 수위를 조절하는 수수호(受水壺), 12시(十二時)마다 종을 울리는 장치인 시기(時機), 1경(一更. 오후 7시 무렵) 이후 5경(五更. 오전 3시 무렵)까지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하는 장치인 경점시보기구 등으로 이뤄졌다.
일렬로 놓인 3개의 파수호를 통과한 물이 수수호에 모이면 수수호의 수위가 올라가게 된다. 수수호에는 잣대가 띄워져 있는데 수위가 일정 정도 이상으로 상승하면 방목(方木)을 건드리게 되고, 방목 내에 설치한 구슬이 낙하하면서 자격루의 종이 울리게 된다.
그런데 현재 덕수궁에 남아있는 국보 제229호 자격루는 중.소 파수호를 나란히 놓고 대파수호를 아래에 둔 2단 구조로 설치돼 있다.
"이 구조로는 도저히 자격루를 작동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5년을 고민했어요. 결국에는 일본인이 자격루를 옮기면서 잘못 설치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남 교수는 아직도 자격루 복원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격루가 하나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 대가 더 있습니다. 사실 자격루는 자명종 같은 보통명사에요. 우리가 흔히 자격루라고 말하는 것은 보루각자격루를 뜻합니다. 이 외에도 흠경각자격루도 있습니다. 흠경각자경루 복원도 끝나야 비로소 자격루를 완전히 복원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연합뉴스 | 입력 : 07-11-21 오후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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