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97년 이후 10년에 걸친 민주화운동 세력의 집권이 종결되고, ‘자율과 경쟁’을 슬로건으로 삼는 정당의 집권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화, 실용주의, 경쟁, 국제 경쟁력 등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학문정책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미 인수위원회에서는 과대 팽창한 교육인적자원부 등에 대한 슬림화와 중복업무 조정 등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선거 공약을 통해 선택과 집중에서 자율과 경쟁으로 교육정책의 방향 전환을 언급했다.
연구비 공개경쟁체제와 연구비 지원 규모 확대를 통한 개별연구자에 대한 인센티브 증대, 그리고 연구 성과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 및 엄격한 승진 구조를 통한 글로벌 시스템 구축 등을 공약 사항으로 제시했다.
시장논리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구성될 학문정책에 대해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학문정책은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 이전 정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학문정책은 시장논리를 중심으로 한 연구비 경쟁 체제가 제도적으로 구축되어 왔으며, 이명박 정권에서도 구체적인 연구의제 설정과 경쟁의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이지 이전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연구 생산 체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선진화’라고 내세우는 비전은 국가 중심적 발전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이는 형평성, 다원주의, 사회적 소수자와의 공감 등 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명박 정권은 관치정책의 해체와 경쟁·자율을 모토로 세우고 있지만, 완전한 자유경쟁과 자율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경쟁과 자율 역시 특정한 가이드라인에 의한 강제와 내면화가 뒤따르기 나름이다.
특히 ‘잃어버린 10년’을 복원시키려는 이명박 정권의 정책은 표면적으로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학문공동체의 시장논리에 대한 종속과 자율성 약화가 노무현 정권 시기보다 심화될 것이다.
공공연히 ‘친기업적’임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권은 ‘기초학문 분야 영어 연구계획서 제출’ ‘해외 우수교수 영입을 통한 국내교수와 경쟁 촉진’ 등에서 드러나듯이, 노무현 정권 못지않게 학문공동체의 ‘시장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미 인문한국 사업 등에서 보여주듯이, 연구비경쟁체제라는 학문정책으로 제도화된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적응된 학문공동체가 이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느냐 여부다.
학문공동체내 형평성보다는 수월성에 기초한 학문정책에 길들여져 자기 공간에 안주해오던 학문공동체가 과연 이런 흐름에 대해 자기 성찰적이고 발본적인 자기비판이 가능할지에 대해 필자는 부정적이다. 이 점에서 향후 인문·사회 학문공동체는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전 사회적인 신자유주의·시장 중심적 흐름은 상당히 긴 지속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학문공동체는 이전 군사독재 시기보다 더 어두운 10년 이상의 터널 속에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학문공동체들이 과거 ‘민주 대 독재’식의 낡은 발상에서 탈피해서, ‘진정한 소수자’(real minority)가 된다는 다짐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제 진실로 학문공동체가 연구비경쟁체제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멈추고,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로부터 사회와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스스로 ‘소수자’가 된다는 다짐이 긴박하게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