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사업 연구노트 지침에 대학들 ‘허걱’
“현실 무시한 과도한 가이드라인”
참여연구자 전원 작성....30년간 보관·관리해야
올 1월부터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연구자에게 ‘연구노트’ 작성을 의무화한 것에 대해 “대학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침”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학문분야별로 연구과제가 다양하고 과제 수와 참여 연구원이 많은 대학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주장이다.
◆과도한 행정부담에 규정 마련 ‘고민’= 과학기술부 훈령으로 지난달 21일 제정된 ‘국가 R&D사업 연구노트 관리지침’에 따르면,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모든 연구자는 제3자가 재현 가능하도록 연구수행 과정 및 결과를 서면·전자연구노트에 상세히 기재해야 하며 △연구기관의 장은 이 노트를 30년간 보관·관리해야 한다. 연구노트는 연구책임자가 주기적으로 노트를 점검해 서명해야 하며, 서면노트는 읽기전용 포맷(PDF/A)으로 별도 보관하고, 전자노트는 기록자와 점검자의 서명 인증기능이 있어야 한다.
이 관리지침은 연구성과의 활용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각 대학은 연구노트 작성·관리 기준을 담은 규정을 제정, 연구원을 교육하고 연구노트 우수 작성자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토록 하고 있다.
과기부로부터 지난 7일 연구노트 작성·관리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라는 공문을 받은 대학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규정을 일주일이 지나 받은 데다, 각 대학이 수신한 내용은 관리지침과 규정 예시문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관리지침에 대한 사전 홍보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대학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지난해부터 연구노트를 각 실험실에 배포해 온 대학들은 연구노트 작성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수행 과제 수가 많고 한 과제에 여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대학에서 학문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연구자에게 노트 작성을 의무화하고, 30년간 보관하도록 한 것은 과도한 행정 부담을 주는 가이드라인이라는 주장이다.
◆참여 연구자 모두 작성하고 30년간 보관= A대학 산학협력단 과장은 “대학의 연수행 과제 수가 많은 대학은 1000여개가 넘는데, 한 과제에 3명의 연구자가 참여한다고 가정할 경우 3000명이 작성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연간 3000권을 대학에서 30년 동안 보관하려면 별도 서고를 마련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B대학 연구처 관계자도 “기업연구원도 못 쓰는 경우도 있는데 연구노트를 쓰는 것 자체가 일인 상황에서 강제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며 “학교가 전체 연구노트를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C대학 연구처 과장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연구노트가 필요하지만 대학의 연구는 80%가 논문으로 나오고, 특허·출원은 20% 수준에 그치는 상황에서 전공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쓰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D대학 산학협력단 관계자도 “서면으로 직접 쓰게 할지, 시스템을 개발해 전자노트를 사용하게 할지 고민 중”이라며 “전자노트는 교수들이 시스템에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따져 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과기부, 상반기중 표준교육안·Q&A 보급= 이에 대해 과기부는 대학이 연구분야에 따라 서면·전자노트를 선택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생명공학·화학 등 실험이 많은 분야는 서면으로 작성하고, 기계공학·IT 분야는 전자노트를 도입하는 등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것.
노트 한 권에 여러 명이 쓰다 보면 제대로 작성이 안 되고, 외국계 학생이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 기술유출 우려도 있어 참여연구자별로 작성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구원은 대학원생까지 모두 작성해야 하며, 연구 비중에 따라 10페이지 내외에서 100~200페이지까지 기재항목을 지켜 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기부 관계자는 “연구노트 표준교육안과 Q&A, 연구노트 우수사례를 책자로 제작해 상반기 중에 보급할 예정”이라며 “특허청과 공동으로 전자연구노트 시범 모델을 개발해 대학과 기관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노트 의무 작성은 ‘규제’가 아닌 ‘권장사항’으로, 제재사항을 일부로 관리지침에서 뺐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지만, 대학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설익은 규정 마련 요구에 대학들의 고민은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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