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함양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에서 사상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자가 나와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서울대 법과대 정시모집 전형에서 합격한 정혜라(20)양.
정 양은 부모님의 고향인 함양에서 태어나 작년 1년간 재수하며 서울에 있던 기간을 빼면 산골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
공부도 학교내에서는 뛰어났지만, 서울대에 입학할 실력은 아니었다.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모두 거창과 진주 등 큰 도시로 빠져나가, 마땅한 경쟁상대가 없었던 탓이었다.
12일 신입생 신체검사를 위해 서울대를 찾은 정양을 서울대입구역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정 양은 서울대 합격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생각지도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동네가 작아서 동네 어른들이 많이 축하해주셨어요. 함양고등학교 40회 졸업생인데 서울대 합격자는 처음이라고 학교 선생님들도 좋아하세요."
정양이 다닌 함양고등학교는 학년당 150명 내외 규모의 작은 학교다. 전 학년을 통틀어도 450명이다.
서울대 합격 비결은 재수 학원에 다니면서 1년 만에 대학수능시험 총점 기준으로 100점이나 올린 때문이다.
"재수하면서 서울 학원에 왔는데, 대부분이 학원과 고액과외를 받은 친구들이었어요. 시골에서 느끼지 못했던 경쟁심리 때문인지 몰라도 공부가 재미있더라구요."
정 양은 처음으로 경쟁상대를 느꼈고, 강남에서 고액 과외를 받은 학원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수능 성적으로도 학원 꼴찌반에서 상위권으로 올랐다.
수능 등급제 첫 시행 등 혼란스러웠던 입시에 대해서는 "공부하는 동안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막상 점수를 받아 놓고보니 한 문제로 인생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마음을 졸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저랑 같이 공부하던 친구는 수능 총점이 저보다는 낮았지만, 등급제 점수는 높았는데 최종에서 떨어졌어요. 또 내신이 낮은 친구도 많이 합격한 걸 보면, 논술과 면접이 당락에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서울대 논술이 본고사 형태라는 논란에 대해 말하자 "본고사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렵기는 어려웠죠. 특히 요구하는 답안 길이가 짧아 요지만 빼내야했어요"라고 말했다.
정 양은 "평소에는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지만, 수능이 끝난 뒤 논술학원을 다녔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학원에서 정답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지만, 안목이 높아진다고 할까.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어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입시제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었더니 "불안하게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안하니까 고액 과외도 받는 것이죠. 또 우리 학교에는 지자체에서 투자해 기숙사도 짓고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투자를 많이 하고 시스템을 갖춰줘도 공부 안하는 학생은 여전히 안하더라구요. 학생들 마음에 달린 것 같아요."
정 양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지만, 굳이 변호사나 판·검사가 꿈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원하는게 그 쪽이지만, 강요하지는 않아서 부담은 없어요. 만약 변호사가 된다면, 인권변호사가 될 거예요. 주변에 억울하지만 가난해서 말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우선 1학년동안은 마음껏 놀고 싶어요. 국토순례도 하고 싶고, 무전여행도 해보고 싶고 해외로도 나가보고 싶어요. 책도 많이 읽고... 입시 공부하면서 읽은 책이 아닌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읽고 싶어요."
19일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는 정 양은 기대도 많지만 걱정하는 마음도 든다고 했다.
"여기는 인맥이라는게 있지 않나요. 외고나 자사고 등 서로 선후배가 많은데, 저는 시골 동네 출신이라 걱정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