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재활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가 돼서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지난 14일 나사렛대 재활학부를 조기 졸업한 이길준씨(31·사진)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세살 때 시력을 잃었이니 선천적 장애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사렛대에 입학, 학문에 정진한 끝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완벽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지적능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경제적 활동도 못할 것으로 보는 인식도 있지요. 비장애인도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이 장애 때문에 빚어진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완벽할 순 없지만 적어도 완벽을 추구하고자 노력했어요."
지난 1977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1995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씨는 원래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만약 가정형편이 뒷받침 됐더라면 아마도 그의 진로는 바뀌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고, 안마·침술 직종에서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공부를 하고 싶어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지요. 미국에선 저와같은 시각장애인들이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놀랐어요. 민간영역도 그렇지만 공직에도 활발하게 진출해 일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들도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 진출해서 자기 능력을 보람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가 재활복지 분야를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2003년 나사렛대 재활학부에 입학한 이씨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업에 매달렸다. 4년 후엔 거의 만점에 가까운(4.3점) 성적으로 7학기 만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씨는 "좋은 성적으로 빨리 졸업하게 돼 기쁘다"면서도 "장애인에 대한 학습 지원체계가 잘 돼 있는 학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겸양을 보였다.
이 씨는 지난해 창단된 시각장애인 챔버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신앙과 음악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다고 말한다. 시각장애인 축구단 국가대표이기도 한 이씨는 2007년 아시아 장애인올림픽 축구 예선전에도 국가대표로 뛰었다.
"신앙이 바탕이 된 음악이 삶의 의욕을 줬고,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을 갖게 했어요. 신체적 재활 이전에 영적 재활을 이룰 수 있었던 셈이지요. 음악과 운동에 있어서도 욕심이 많았는데 여러 활동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다음달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에 입학하는 이 씨는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다.
"재활복지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선진국인 미국으로 가서 박사과정까지 마치려고 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전공분야에서 교수가 되겠습니다."
이 씨가 교수가 되려는 이유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장애학생들에게 직업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위해서다.
"교수가 돼서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게 도우려고 합니다. 지금은 안마나 침술에만 한정돼 있는데, 그런 분야도 중요하지만 더 다양해져야 해요. 그러려면 기업가나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제가 교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일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재활분야도 더 연구해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