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
김경성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는 인터뷰 내내 “입학사정관제가 정착하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9년 입시에서 처음으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대학들에 던지는 충고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원래 좋은 취지를 구현하지 못한 채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서울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만든 김 교수가 “서울대도 아직은 시범 중”이라고 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기존 전형과 달리 ‘점수’라는 지표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고등학교가 제출할 수 있는 자료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이다. 대학에 전달되는 이런 자료로는 해당 학생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학생부는 제한적인 정보만 담고 있다.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도 충분한 정보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위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타의 모범이 된다’는 식의 정보만 남는다. 이런 걸 정보라고 할 수 있나.”
그래서 시도한 게 학교·가정방문이다. 서울대 입학사정 전문위원들은 지난해 응시생 중 30명을 추려 학교에서 담임교사를 만나고 가정을 방문해 부모들을 만났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 중 점수가 낮더라도 잠재력이 충분한 학생을 발굴해보자는 취지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면 서울대라는 훌륭한 환경에서는 더 나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나 그 과정을 살피면 학생의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다. 단순 지표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이다.”
이런 노력은 ‘다양성’을 늘리려는 시도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 가톨릭대·경희대가 전형에서 별도로 토론을 평가하는 것과 인하대가 비인가학교 출신에 한해 대안학교전형을 실시하는 것 등을 높게 평가했다.
“대학이 설립이념에 맞는 학생을 뽑으라고 도입한 게 입학사정관제도다. 인하대가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에게서 우수함을 발견했다면 그 학생을 뽑는 거다. 과거에는 학생 자료가 단선이었다면, 지금은 부족하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학생에 대한 정보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늘어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면 원하는 학생을 선별할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은 결국 대학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양한 정보를 얻는 동시에 정보를 정교화하고 다듬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래서 만든 게 고교대학연계협의회다. 16개 시·도 고교 교사와 진학상담 교사로 구성한 협의회는 대학과 고교를 이어주는 일종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한다.
“대학이 ‘이런 정보를 원한다’고 하면 협의회는 ‘고등학교에서는 이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응답한다. 말하자면 대학과 고교 간의 폭을 좁혀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의 신뢰도 쌓이지 않겠나.”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려면 정보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 딱 떨어지는 점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시비가 붙을 수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인맥이 끈끈하게 얽히고 설킨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개인이 학생의 당락을 결정하는 구조는 안 된다. 누군가가 아는 사람을 뽑고 싶어할 때 다른 이가 ‘아니다’라고 거부하면 배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짜야 한다. 한 명의 학생을 뽑을 때 여러 면에서 다단계로 판단해야 한다.”
김 교수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정착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입학사정관들이 뽑은 학생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사회가 이를 인정해나갈 때 신뢰가 쌓이고 결국 정착단계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서울대 입학사정관제도로 뽑는 인원은 정원 내로 넣지 않을 생각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학에 대한 사회의 신뢰다. 아무리 공정한 과정을 거쳐도 ‘친구 아들이라 뽑았느냐’는 말들이 나돈다는 것은 사회가 아직 성숙치 못했고, 그만큼 대학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학도 이런 시각을 벗어나려면 성급하게 시도할 것이 아니라 준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꾸준히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라는 말은 모호하지만 입학사정관제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