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회가 지난 9일 총장선출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현승종 이사장도 15일 이 총장이 사표를 제출한 직후 이 같은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현승종 이사장은 “직선제나 간선제 모두 문제가 많다”며 “총장 임면권은 재단 이사회가 갖는 권한이기 때문에 임명제로 가야 한다”고 밝혀 ‘임명제 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 고려대의 총장선출제도는 직선제를 가미한 간선제 형태를 띠고 있다. 교수, 직원, 학생, 재단 대표가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를 구성하고 총장 후보자 2~3인을 추천하면 이사회가 이중 1명을 총장으로 최종 선임하는 방식이다. 총추위는 단과대 대표 교수 15명, 재단인사 4명, 교우회 5명, 교직원 3명, 학생 3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총추위에서 후보자를 선출하기 전에 교수의회가 네거티브 방식의 예비심사를 실시해 부적격자를 걸려낸다. 이는 간선제 방식에 교수 직선제를 가미시킨 형태로 볼 수 있다.
고려대 이사회가 손을 댈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바로 이 직선제 성격의 예비심사제도다. 완전 임명제로 전환하기에는 구성원의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교수 직선제 성격의 예비심사만을 폐지하는 쪽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한 재단 관계자는 “총장선출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줄이거나 예방하는 쪽으로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해, 교수 직선제의 소산인 예비심사의 개선을 암시했다.
고려대 사태의 원인을 현재의 총장선출제도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지만, 교수의회 예비심사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예비심사 제도는 고려대 총장선임 규칙에 명문화된 절차는 아니다. 특히 부적격자를 골라내는 네거티브 방식이 후보자의 인격을 모독하고, 적격자를 선택해야 하는 투표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점에서 논란이 계속돼 왔다. 지난해 11월 어윤대 총장이 낙마할 당시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총장이 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는 후보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총장 직선제 역기능 많다”=비단 고려대뿐만 아니다. 총장 직선제가 교수들 간의 파벌과 사전선거 운동을 조장한다는 비판은 그간 심심치 않게 거론돼 왔다.
대학 설립 초기 임명제가 주류를 이루던 대학가에 직선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87년 민주화 이후다. 87년 12월 목포대에서 총장직선제가 처음 도입된 후 대학가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계명대(88년 5월), 국민대(88년 7월), 연세대(88년 8월), 조선대(88년 9월), 영남대(88년 10월), 세종대(88년 11월) 등에서 교수 직선으로 총장 후보를 선출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2006년 7월말 현재 전국 162개 대학을 대상으로 놓고 볼 때 직선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은 국·사립을 합쳐 33개교에 불과하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4개 대학만이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직선제가 총장선출에 관한 합리적인 제도로서 대학가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떤 제도든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기 마련”이라며 “직선제의 경우 일부 대학이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다 보니까 순기능 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고 판단했기에 정착되지 못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총장선출에서 발생하는 잡음이 대부분 직선제를 실시하는 대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총장선출 과정에서의 갈등은 대부분 자신들의 참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갈등이다. 지난해만 해도 충북대, 목원대, 인재대 등이 총장선출방식을 두고 이러한 갈등을 겪었다.
충북대와 목원대는 직원 참여비율을 두고서 교수와 직원들이 줄다리기를 벌였고, 인제대는 의대 교수들이 자신들의 참여비율이 적다며 문제제기를 해 교수들 간의 갈등이 일었다.
대학 총장이 취임 후 4년간 학교를 힘 있게 이끌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구성원의 지지를 받는 인사가 총장에 선출돼야 한다.
직선제의 순기능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구성원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인사가 총장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 현실에서는 굴절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총장선출시 참여비율을 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사전선거운동, 선출된 후의 후유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가 바로 직선제라는 지적이다.
동국대의 경우, 지난해 초부터 교수 중심의 직선제에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를 통한 간선제 방식으로 총장선출제도를 바꿨다. 지난해 6월 ‘총장후보자 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 규정안’을 의결하고 이를 통해 총장을 선출하겠다고 밝힌 것. 이에 교수회 등이 반발했지만, 결국 총추위 후보선출 과정에 교수회서 선출한 후보들도 참여함으로써 갈등이 일단락 됐다.
◆“직선할 땐 총장 후보 안 나왔다”=동국대 법인사무국 관계자는 “90년대부터 16년간 직선제를 하면서 편 가르기로 인한 선거후유증을 겪어왔다”며 “총장이 된 후에는 논공행상에 따라 인사를 해 공정한 인사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총추위 방식이 종전 직선제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대학 K교수는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할 때는 총장 공모에 응하지 않다가 지난해 총장선출제도가 바뀌자 총장 후보로 나왔다. 그는 “직선제를 하면 교수와 직원을 찾아다니며 밥사고 술사며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며 “이런 사전 선거운동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그러다 보면 파벌이 생기고 총장이 되더라도 공정한 인사를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직선제를 실시해 온 대학에서 공공연하게 지적돼 왔다. 표를 다지기 위한 사전선거운동이 버젓이 벌어지고, 선거과정에서 후보캠프 간 파벌이 형성된다. 또 총장에 당선된 후에는 논공행상에 따른 보은조치로 공정한 인사정책을 펼 수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몇 해 전 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한 국립 H대의 경우 직선 결과 박빙으로 뽑힌 한 총장이 자신의 고교 동문 3명을 핵심 보직라인에 앉혔다. 인사권자인 총장이 자신과 코드가 맞고, 선거를 도운 인사들을 인선한 것. 그러나 이 중 한 보직교수는 직위를 남용한 비리로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얼마 전 교수·직원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한 지방의 D대는 교수와 직원들이 모의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총장을 선출하려다 실패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학교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모교출신 교수와 직원들이 모의해 역시 모교 출신의 총장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에 대한 이사회의 반작용으로 타교 출신 총장이 선임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출된 총장은 4년간 공정한 인사를 펴지도 못할 뿐더러, 반대측 구성원의 총장 흔들기가 빚어질 수 있다. 서울의 C대 관계자는 “떨어진 측에서는 새로운 인물 내세워 뒤집으려하고, 반대측 인사가 총장이 되면 신임 총장의 말을 잘 듣지 않고 흔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직선제의 경우 대체로 내부 인사를 후보로 선거가 진행되기 때문에 능력 있는 외부 인사 영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마당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유능한 리더십을 수혈할 필요가 있다”며 “외부 인사 영입이 가능해야 내부에서도 거기에 맞서기 위해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 배출되는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각 대학에서 총장선출제도가 변모되는 과정은 재단과 구성원간의 밀고 당기는 싸움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재단은 ‘이사회 임명제’에 가장 가까운 방식을 선호하고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직선제를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선제의 폐단’은 재단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퍼트린 이데올로기적 견해라는 주장도 있다. 한 국립대 교수는 “국립대의 경우 민주화 이후 직선제를 법적으로 보장된 형태로 쟁취한 측면이 있다”며 “사립대의 경우 재단이 그간 대학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직선제 폐지를 원했고, ‘직선제 폐단’논리의 상당부분은 재단의 이런 입장이 반영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총장선출 외국대학은?=바람직한 총장선출방식에 대한 고민에 있어 우리보다 대학의 역사가 긴 나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국대학의 총장선출방식은 크게 유럽식 모델과 미국식 모델로 나뉜다. 유럽식은 교수·직원·학생 등 대학 구성원 참여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장하고 있는 반면, 미국식은 이사회의 주관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형태다.
그러나 대학 구성원의 참여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장하고 있는 유럽식도 어느 한 두 집단의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하진 않는다. 총장선출 준비위원회 등을 통한 간선대의제 형태를 띠고 있다.
대학기준법을 통해 전체 고등교육정책을 관장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총장선출은 두 단계를 거친다. ‘총장선출 준비위원회준비위(이하 준비위)’를 구성해 1차 후보자(보통 3인)를 선출하고, 2차로 중앙대의기구의 심사를 통해 최종 1명을 선출한다. 주 정부는 선출과정에 하자가 없는 한 대학 자체에서 선출된 후보자를 총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준비위는 교수, 직원, 학생으로 구성돼 있고, 사실상 총장을 최종적으로 선출하는 중앙대의기구도 총장과 학생, 연구직원, 비연구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의 경우 총장선출은 일반적으로 이사회의 주관 아래 총학장선임위원회(이하 선임위)를 구성, 간선제 형태로 이뤄진다. 선임위는 이사회, 교수, 학생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이사회에 의해 임명되거나 각 집단의 대표로 선출된다.
콜롬비아대와 일리노이스대에서 10년간 연구원으로 생활했던 한 교수는 “미국 대학의 총학장선임위는 사실상 재단의 주도로 구성되고 교수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며 “미국의 대학들이 총장을 선출할 때 가장 중시하는 요건이 모금능력이다 그 다음 경영능력, 학문적 업적, 도덕성 등이 중시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어차피 총장이 되면 총장과 교수집단은 상호협력관계이기도 하지만 견제관계가 된다. 교수들은 총장의 지지기반이기도 하면서 개혁대상이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외부 인사나 원로교수 등 학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위원이 전체 선임위원 중 1/3 이상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으며, 이점은 한국 대학들도 참고해야 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