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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학문융합 '진행 중'
학문간 벽 뛰어넘기 실험 한창…정착 과제는 ‘산적’
견고한 학과·전공의 벽을 허물고, 인문학과 자연학, 예술학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학문간 융합’ 실험이 신학기 대학가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학문간 벽을 뛰어넘고 있는 대학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 

# 장면 1.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2학년을 마친 정세윤군은 이번 학기에 KAIST 산업공학과로 대학과 전공을 바꿨다. 여느 편입생과 다른 점은 KAIST가 학부 전공간 융합을 위해 첫 선발한 ‘2+3 학사융합과정’에 합격한 것.

대학 진학후 예상했던 것과 다른 커리큘럼에 전과를 고민하던 정군은 자신이 전과 대상이 안 되는 줄 오인해 수능을 다시 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KAIST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새로운 캠퍼스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KAIST는 융합 학문 시대에 발맞춰 일반대학에서 인문사회·예술·과학·공학 등의 다양한 기초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입생을 선발했다. 서로 다른 전공을 공부한 학생들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융합연구의 기초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다.

KAIST 학생선발팀 관계자는 “국문학과 출신에서부터 자연과학, 공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선발됐으며, 공학계열이라도 같은 학과보다는 다른 전공자가 뽑혔다”며 “선발 절차와 방법 등을 보완해 오는 11월께 두 번째 학사융합과정생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장면 2. 광운대는 지난 26일 교내 문화관 소극장에서 ‘동북아대학’ 출범식을 가졌다. 08학번 첫 새내기를 뽑은 동북아대학은 기존의 중국학과·일본학과·국제통상학과 등을 묶어 동북아통상학부(한일통상전공, 한중통상전공), 동북아문화산업학부(문화교류전공, 문화콘텐츠개발전공), 국제협력학부(국제관계전공) 등 3개의 학부로 새로운 학문적 융합을 선보인 것이다.

권태한 동북아대학장은 “한·중·일 지역의 통상·문화·국제협력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방점을 두고 언어와 지역학을 바탕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결합한 교육과정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학문간 벽을 뛰어넘기 위해 25명의 전임교수는 학부가 아닌 단과대학에 소속돼 있으며, 모든 학생은 영어는 필수로, 중국어와 일본어 중에서 한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외국어 교육과 영역별 지정교양과목이 필수로 지정돼 졸업 이수 학점이 150학점으로 늘어났다.

권 학장은 “교수들이 학과의 벽 속에 안주하는 타성을 극복하고, 탄력적으로 교과목을 운영하자는 취지에서 소속을 학부가 아닌 단과대학으로 바꿨다”며 “소속감이 떨어지는 단점은 학생지도시스템을 개편해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한명의 교수에게 지도를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 장면 3. 지난 19일 기자가 찾은 한양대 인문대 수행연구교수실에서는 6명의 전담 연구교수가 ‘수행인문학’ 강의 내용과 학생지도 사항을 점검하고 있었다.

지난 2005년부터 국고 지원을 받아 문화·과학·공학의 경계를 가로질러 융합하는 ‘수행인문학’ 특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양대는 수행융합전공과 글로컬비즈니스 융합부전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07학년도 인문대 신입생부터는 각자 전공을 유지하면서 융합 프로그램인 ‘과학기술학’ ‘공공수행인문학’ ‘미디어문화’ ‘외국커뮤니케이션’ 중 하나를 필수로 이수하도록 했다.

4개 융합전공별로 학기마다 신규 과목이 개설되는데, 이번 학기에는 ‘동양의 과학기술 사상’, ‘과학기술커뮤니케이션’, ‘디지털콘텐츠 창작의 이론과 실제’, ‘디지털시대의 예술철학’ 등이 개설됐으며, 2학기에는 ‘공공수행인문학의 이론과 실제’, ‘법과 인문학’, ‘문화콘텐츠와 브랜드 전략’ 등이 선보일 예정이다.

수업은 강의와 튜토리얼(Tutorial)을 결합해 심화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며, 중간·기말고사로 나눠 심층평가를 실시한다. 튜토리얼은 전공 담임튜터가 융합전공 선택부터 학습지도, 진로상담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으로, 6명의 전문 튜터가 학생들을 맡아 졸업할 때까지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형석 연구교수는 “인문대 전체 교수가 강의에 참여하고, 전담 인력을 영입해 새로운 교과목 개발과 교육방식, 평가방법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며 “융합만을 위한 융합, 보여주기식 융합을 지양하고, 새로운 전공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 참여·전담 인력 충원 시급…재정지원 있어야

이처럼 학문간 융합을 추진하는 대학이 늘고 있지만, 학문간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높은 학과간의 장벽을 허물려면 교수들의 동참이 전제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한데다, 새로운 교과목을 연구하고 교육하려면 전담 인력 확보가 필수조건. 재정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새로운 교육 모형 개발을 위한 연구와 교육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양대 고광민 연구교수는 “강의와 튜토리얼을 결합하려면 교수가 학업 상담뿐 아니라, 취업상담, 개인지도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강의보다 힘들다”고 전했다.

한양대 수행인문학의 경우 과목별로 ‘융합성적표’를 만들어 공부처방전을 주고, 교육과 상담을 벌이고 있는데, 별도의 전문 튜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행인문학 교육센터에는 웬만한 단과대 교학과 수준의 인력이 배치돼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학 차원에서 특성화 분야로 선정해 투자하고, 국고 지원을 받았기 때문.

KAIST 정세윤군은 “학사융합생은 전공만 수강하면 되는 걸로 알았는데, 입학해 보니 기초과목을 수강해야 하고, 같은 전공으로 편입해온 학생도 전적 대학의 학점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학생들에게 제도에 대한 홍보와 자세한 가이드라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태한 광운대 동북아대학장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해 교육만을 생각하는 교수들의 열의와 참여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데 필요한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정착이 어렵다”며 “‘무늬만 융합’ 프로그램을 만들면 계속 찌그덕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양희 기자 (yanghee@unn.net) | 입력 : 08-03-31 오전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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