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ICU 통합 물건너 가나
새정부 출범 후 ‘1200억원+α’ 예산지원 불투명
KAIST 내부 반발 우려 “ICU 요구 수용 어려워”
‘KAIST-ICU 통합’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서남표 KAIST 총장이 지난달 27일 “ICU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데다 통합에 따른 정부 예산 지원도 불투명해 통합이 어렵게 됐다”고 밝힌 데 이어, ICU도 ‘통합 결렬에 대비한 대안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양 교 통합이 급작스럽게 ‘무산’쪽으로 기운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양교 통합에 따른 정부지원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KAIST는 그간 ICU와의 통합을 조건으로 ‘1200억원+α’를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생기는 통합 단과대학 운영비로 매년 250억원을 정보통신부(100억원)와 과학기술부(150억원)가 분담해줄 것을 요구했고, IT연구소 설립을 위한 1200억원도 추가로 요구했다.
그러나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정통부는 지식경제부로,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면서 당시 담당 공무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마디로 ‘돈 줄 곳’이 불투명해 진 셈이다.
물론 KAIST는 “ICU가 무리한 통합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남표 총장도 “ICU가 테뉴어(영년직)를 받은 교직원의 지위를 보장해 달라 하고, 독립할테니 부설기관으로 해 달라는 등 조건을 너무 많이 내걸었다”면서 통합 결렬의 책임을 ICU에 돌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KAIST가 ICU측에 보낸 공문을 보면 KAIST의 심경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4월27일 KAIST가 ICU에 보낸 ‘통합 추진에 따른 검토의견’에 따르면, KAIST는 양교 IT관련 학과·연구소를 통합해 ‘IT 컨버전스 캠퍼스(가칭)’를 설치하고, 이를 부총장급 체제로 자율 운영토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통합 후 기존 ICU 교직원에 대해서는 일정기간(6년 내외) 동안 구조조정에서 제외한다”고도 약속했다.
지난해만 해도 KAIST가 ICU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ICU와의 통합으로 얻어지는 실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ICU는 정보통신부로부터 75억원의 운영비를 지원받았다. 양교 통합이 정통부의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에 통합 후 운영비 250억원중 정통부가 분담할 100억원을 얻어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ICU가 쌓아둔 적립금 1000억원도 부수적으로 생기는 이익이었다. 서총장이 강조한 ‘세계적 대학과 경쟁하기 위한 규모’를 갖추는데도 ICU와의 통합은 유효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ICU는 올해부터 정부지원금도 없이 적립금을 조금씩 까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게다가 정부조직개편으로 정부지원 전망도 불투명해 졌다. 서남표 총장이 “ICU 맡으려면 매년 250억원이 필요한데 KAIST는 돈이 없다”며 “정부가 매년 이 돈을 내준다면 모르겠지만 이젠 어느 부서에서도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KAIST의 내부 개혁이 계속되면서 ICU의 편의를 봐줬다간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닥칠 우려도 있다. 장순흥 교학부총장은 “ICU와 통합해도 KAIST 교직원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내부설득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향후 KAIST 입지에 중대한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더해진다. 원래 ‘과기부 산하 특수법인’이었던 KAIST는 매년 운영예산 1200억원을 지원받는데다 학생들의 병역특례 혜택도 받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와 과기부가 통합되면서 이런 KAIST의 ‘특혜’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기부 산하’로 있던 때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가 된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도 표면상으로는 ‘양교 통합’에 대한 정책 변화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상황의 변화는 인정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교육과학기술부나 지식경제부 모두 양교 통합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양교 이사진이나 구성원이 반대하면 정부가 통합을 강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정통부 장관이 ICU 이사장을 맡으며 직접 통합을 주도하던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생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ICU도 통합협상의 여지는 남겨두면서도, “협상 결렬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위해서라도 이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KAIST-ICU 통합’은 정통부과 과기부가 통합을 주도하던 지난해와는 분명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는 그나마 KAIST와 정통부가 의지를 가지고 통합에 나서, 결국 ICU 이사회의 의결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지금은 양교가 ‘통합 결렬’을 염두에 두고 있고, 정부 또한 양교 통합 후 재정지원에 대해 확답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양교의 통합협상 전망도 점차 ‘결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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