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장애학생 도우미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고려대에 재학중인 채정훈(간호학과 3년·사진)씨에게 이번 학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학기 초 휴학을 하며 시작한 교내 ‘장애학생 도우미’ 활동 때문이다.
“제 전공인 간호학 중에서도 특히 노인간호와 재활간호 쪽에 관심이 많아 도우미를 신청하게 됐어요. 아직 배워가는 단계지만, 앞으로 제 길을 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번 학기부터 청각 장애학생에 대한 필기보조 도우미를 시작한 채씨는 노인간호나 재활간호 모두 ‘인내심’과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각 장애우의 필기를 도와주면서 제가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장애인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내심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채씨는 필기보조 도우미를 할 땐, 강의시간에 교수가 던진 농담까지 필기해 알려준다. 장애우가 최대한 수업에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필기도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쓴다. 강의가 끝난 뒤엔 워드작업으로 강의내용을 정리해 장애우에게 전자메일로 보내주고 있다.
채씨가 ‘육필’을 고집하는 데에는 장애학생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 사학과 재학중인 장애학생을 돕고 있는 채씨는 “강의시간에 노트북을 많이 사용하는 이·공과계열과는 달리 문과대학의 경우 노트북 사용자가 드물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노트북을 사용하면, 장애학생이 자신의 노트북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강의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채씨가 강의내용을 필기하면, 장애학생은 이를 옆에서 받아 적으며 강의를 듣는다.
최씨는 얼마 전 지하철에서 만난 한 장애인을 통해 비장애인들을 위한 일종의 ‘메뉴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고려대에 재학중 장애학생 120명과 함께 생활하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을 돕는 방법’을 알려주자는 취지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한 장애인이 화장실 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서, 이를 거들어 준 적이 있어요. 그 때 문득 제가 배운 재활간호를 접목시켜 비장애인들을 위한 ‘지침서’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돕는 방법을 모르면 장애우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게 되고, 비장애인도 다칠 수 있거든요. ‘메뉴얼’에는 장애학생 도우미들의 활동 후기도 싣고, 재활간호학의 이론적 지식도 담을 생각이에요. 그러면 장애우나 비장애인에게 모두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채씨는 이런 의견을 지난 16일 학생처장과 장애학생 등이 모인 간담회에서 밝혔다. 김한겸 학생처장으로부터 공감도 얻어, 학교측의 예산 지원 약속도 받아냈다. 채씨는 “1, 2학기 동안 장애학생 도우미를 한 학우들의 후기를 모으고, 간호대학장님께 도움을 청해 재활간호 지식이 담긴 메뉴얼을 내년 상반기 쯤 만들어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메뉴얼을 발간하는 목적은 ‘홍보’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장애학생에겐 학내 지원제도를 알리고, 비장애인들에겐 도우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장애학생 중에서도 도서관을 이용할 때 도우미 지원을 받을 수 있단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장애학생을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비장애인도 있고요. 매뉴얼을 펴내면 이런 학우들에게 좋은 홍보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채정훈씨는 37살의 ‘늦깎이 대학생’이다. 이력도 특이하다. 연세대 자연과학부(생화학전공)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화학교사로 일하다가 지난 2005년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고려대에 입학했다. “중풍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서”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고교 교사로 일할 당시 아버지의 중풍이 심해졌어요. 간호학을 배워서 아버지를 간호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한 분들도 돕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졸업하면 노인간호나 재활간호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이번 학기 휴학하면서 제가 겪은 경험들은 어쩌면 앞으로의 제 진로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