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범보수 진영이 무려 200여석 이상을 독식한 상황이나,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의 분열로 간신히 명백을 유지하게 된 총선 결과는 익히 예상한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에, 81석의 의석을 획득한 민주당은 오히려 총선 이후부터 본격적인 위기에 빠져들 확률이 높다.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확인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는 기권율이다. 무려 54%에 이르는 기권율은 뒤틀린 의회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노골화했다.
이 기권율 앞에서 보수의 약진을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것은 표층적 현실에 매몰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기권으로 상징되는 선택행위의 ‘징후적’ 의미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데 있다고 본다.
바야흐로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민주화’로 표상되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투표행위에 동반되는 유권자의 ‘열정’과는 무관한 자리로 배치되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몰락은 양의적이다. 이는 ‘정치민주화’를 통해 한나라당에 대한 ‘대항적 차별화’를 꾀했던 민주당이 ‘경제민주화’라는 오늘의 핵심의제 앞에서, 결국 한나라당과 동류의 정치세력에 불과하다는 대중적 판단 앞에, 이 정당이 직면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신자유주의 의제’ 앞에서는 그 정치적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것이 민주당에 대한 대중적 불신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주당이 자신의 존재근거를 증명하고, 분산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배의 진행방향을 ‘왼쪽으로’ 과감하게 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실용’이나 ‘현대화 노선’을 걷는다는 미명 하에, 한나라당과 별 차이 없는 정치노선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정치적 소멸의 날이 멀지 않다.
정통진보세력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른바 ‘종북주의’ 논쟁이라는 불필요한 의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진보정당의 지지층 역시 소모적인 논쟁의 와중에 분열됐다. 민주당이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만약 진보정당이 새롭게 열린 정치적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실망스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북주의 논쟁은 진보진영 전체를 시대착오적인 정파투쟁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정파 간의 대립적이고 ‘순결주의적인’ 동일체 의식이 여전히 끈질기다는 비관적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이들 진보정당들은 정치가 유권자와의 ‘3자게임’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진보정치에 미래가 있을까.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일단 이들 진보세력은 분화의 속도를 높이는 ‘진보경쟁’을 통해서, 오히려 오늘과 같은 현실 속에서 진보정치가 ‘매혹적인’ 정치적 선택일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자처한 민주당은 ‘중도주의’라는 불분명한 정체성 논쟁 대신 ‘경제민주화’에 집중하여, 당의 노선을 추슬러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소모적인 ‘선명성 투쟁’을 멈추고, ‘미래형 의제’를 체계화하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진보개혁세력들은 신자유주의와 성장지상주의,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로 상징되는 반생태주의 의제에 관해서는 당파적 이해를 뛰어넘어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
동시에 토호들이 발호하고 있는 지방정치의 하부구조를 실사구시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직접민주주의의 효과적인 모델들을 실험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열정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