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조양희 기자】“두 달도 안 돼 어마어마한 일을 하다 보니 문제가 드러나는 거다.”, “노벨상 수상자가 1회 강연료로 1만 5000달러를 받는 게 국제공인가인데, 2주 이상 체류하면 3억~5억원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 “대학간 유치 경쟁이 붙으면 석학 1명을 놓고 서로 데려오려고 할 텐데, 우리나라 위상이 뭐가 되나.”….
지난 7일 대전 KAIST에서 첫 공개된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World Class University, WCU) 사업 평가지표(안)를 접한 대학 관계자들은 졸속 사업 설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국적 갖고, 이제라도 해외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자조적인 반응도 나왔다. 해외에서 포스닥 과정을 밟고 있는 자녀를 둔 한 교수는 “국내에 들어오지 말라고 해야 겠다”고까지 했다.
심지어 “노벨상은 업적이 사회적으로 환원돼 상당한 결과를 냈을 때 주는 것으로, 수상자가 나온 주제는 이미 끝난 것으로 간주해 다른 학자들이 연구를 안한다”는 말에 동조 박수가 나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해외학자 초빙 대상에 ‘외국 시민권을 가진 재외동포·한국국적 소유자’도 포함이 된다고 밝혔지만, 교수들은 “국내 과학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외 대학평가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사업 설계라는 지적이다.
■ 너무 과하거나 허술하거나= 이종문 전북대 교수는 “대학원은 학생들이 서울로만 가려하기 때문에 지방대는 단기간에 유명 학과를 만들기도 어렵다”며 “자꾸 새로운 학과를 만들라고 하는데, 외국인 교수가 새 전공을 가져와도 국내 교수가 전공을 바꾸려면 5~1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에서 ‘해외교수초빙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3개월에서 1년을 초빙하는 과제인데도 선진국 교수를 초빙하기가 어려워 백방으로 뛰고 있다”며 “3년 전임으로 오려면 한국에 뿌리를 내릴 각오를 하고 와야 한다. 그럴 자원도 많지 않고 미국·유럽 등 유수 대학에서 유치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해외 석학이면 그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인데 3년 이상 전임으로 오는 게 가능하겠냐는 반문으로, 1년에서 길면 2년 정도로 짧은 기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성일 KAIST 교수는 “전공 개설시 해외학자를 50%이상으로 구성하라고 하는데, 1차 사업후 본국으로 돌아가면 학과 존속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해외학자 50% 조건을 낮춰달라고 주장했다.
같은 대학 장석복 교수는 “몇년 전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800만원에 초청해 10일동안 체류하며 강연회 등을 가진 적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국민 혈세를 낭비하지 않으려면 석학초빙 지원사업에서 최소한 한달이상은 국내에 체류하게 하고 1년 후에 공동논문을 1~2편 내는 강화조건을 만들어 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평가지표 객관성은?= 전공개설과 개별 초빙과제 심사에서 최근 3년간 과학인용색인(SCI)·스코퍼스(SCOPUS)급 논문을 상위 5% 저널로 한정한 것에 대해 손동철 경북대 교수는 “논문에 따라서는 상위 6%, 7%가 중요한 것도 있는데 왜 꼭 5%냐”고 반문하며 분야별 특성에 따른 가중치를 둘 것을 요구했다.
이공계내에서도 기술공학과 자연과학의 분야별 특성이 다르고, 같은 화학이라도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이 다른데 어디까지를 동일분야로 볼 것인지, ‘잠재역량이 높은 해외학자’가 신진인력일 경우 연구실적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이냐는 문의도 이어졌다.
특히 우수논문만 평가할뿐 특허나 기술이전 실적을 반영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신성장동력 분야를 지원한다는 사업 취지를 발휘하려면 산업체 인력을 초빙해야 하는데 논문을 잘 안쓰는 산업체 인사의 특성상 특허와 사업화 실적을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효진 부경대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과제 심사결과를 보면 객관적인 지표가 기를 못 쓰고, 주관적 평가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평가의 객관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이에 대해 박주호 학술연구진흥과장은 “연구실적 평가에서 질적인 면을 강조해 해외동료평가를 도입했다”며 “비영어권의 논문실적을 보완하려고 스코퍼스를 포함시키는 등 어느 사업보다 객관적인 지표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노벨상 수상자를 장기간 머물게 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최소 요건인 2주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유치 타당성과 유용도를 평가해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동료평가 반영 비율에 대해서는 해외동료평가 점수만 반영할지, 전공패널심사와 해외동료평가를 5대 5 또는 6대 4로 할지 등을 놓고 검토중으로 사업공고때 제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연구실적을 최근 5년간으로 늘리고, 특허나 기술이전료 등을 반영 달라는 주문에 대해서도 의견수렴을 통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