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이다. 안팎으로 멍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밖으로는 천정부지 유가의 공습이다. 1년 전에 비해 유가는 곱절이 올랐다. 원자재와 곡물 값도 연속 등귀고,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옥죄어 온다. 안으로는 촛불 시위가 거의 두 달 이상을 끌었다. 환율도 올랐다. 그런데 이건 밖의 사정 때문이 아니다. 수출증대효과를 겨냥하고 일부러 달러가치를 올라가게 했으니 불러들인 내환이다.
모든 부정적 현상의 원인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라는 공세가 그치지 않는다.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 해도 못해먹을 노릇이다. 게다가 내놓은 수습책은 민심 요구에 미달이다. 청와대 비서진을 거의 다 갈아치우고 3부장관을 경질했다. 그러나 ‘소통’의 진정성을 놓고 언론은 매일 의혹을 제기한다. 옛날 같으면 시비거리도 안 될 걸 꼬투리를 삼는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지명된 모대학 총장이 또 도마 위에 오른다. 광우병만 문책하고 환율정책의 오판 책임은 어디 갔느냐고 묻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촛불시위의 배후에 좌파세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역공세를 폈다. 밀리기만 할 것이냐는 우파 언론의 묵시적 지원으로 효과를 보는 것 같다. 역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이념공세가 약발이 오르는 걸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소멸이 아니라 휴전국면으로 보는 게 옳다. 광우병을 겨냥한 촛불시위의 실체와 명분은 국민건강이다. ‘미국 쇠고기 먹고 다 병 걸린다’는 공포감에서 거리 민심이 쏟아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본질은 새로운 사회운동이다. 그래서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명명하고 나선다. 독재체제 아래서나 가능한 저항운동 말이다.
불과 5개월 밖에 안 된 대통령에게 저항운동을 한다는 게 논리적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촛불은 저항운동으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는 암시가 깃들어 있다. 다분히 정치적이다. 2개월 이상이라는 긴 시간과 폭력대결이라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사회심리는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웨이트 앤 씨’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로 표를 몰아 대통령이 되었다. 예의 ‘747 공약’이다. 이젠 ‘470’으로 급전직하 변해 버렸다. 4% 성장, 7%물가 상승에 선진국 G7진입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이런 비관적 상황을 지난 대선 때는 예측할 수 없었다는 반응을 정부는 변명삼고 있다. 위기가 오고 있는 데 애써 상황인식을 정치적 이유로 숨긴 것은 아닐까. 오히려 불과 집권 5개월만에 정부는 말을 돌리고 있다. ‘위기다’하고 말이다. 위기론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문제의 유가 수준을 대선 당시엔 90달러 수중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7% 성장, 4만달러 목표는 거품이다. 국민경제의 거품이 아니라 정책거품이다. 경제 대통령 대망론 자체가 거품이다. 많은 유권자들의 실망지수는 폭락하는 주가지수를 닮아가고 있다. 대통령의 추락하는 권위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위엄이 버림받게 되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여론의 눈총과 끊임없는 비판을 받는 그런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위기의 상황은 항상 존재하고 인터넷 언로는 체제언론이 감쌀 수도 있었던 수상한 것 까지 다 폭로한다. 누구도 기자가 되고 인터넷 자판을 두드린다. 체제 언론도 국가의 이름을 빌어 대통령을 공격한다. 취약한 구조의 대통령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높은 도덕성 전문성 명확한 판단력 그리고 개인적 위엄이 있어야 시대와 대결할 수가 있다.
오직 세력의 지원만 믿어서는 안 된다. 말을 앞세우고 그럴듯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엔 사회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다. 왜 그렇게 겉모습과 속셈이 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는가를 간파해야 할 것이다. 누리는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진정성을 보이는 게 리더십의 제1 필요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