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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대학에선] 판례의 바다를 항해하는 미국로스쿨
박경신 고려대 교수(캘리포니아대 로스쿨)
“로스쿨은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미국의 어느 로스쿨 입학식에서 학장이 입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법은 방대하고 세분화되어 있다. 로스쿨을 졸업한다 해도 필요한 법 지식을 모두 배워서 졸업할 수는 없다. 변호사든 판사든 검사든 이들 앞에 제시되는 법률문제들은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문제들이다. 법률가들이 곧바로 답해줄 수 있는 문제들은 어차피 스스로가 ‘교과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들이다.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암기력이 필요치 않다. 복잡다기한 사실들을 법률적으로 유형화하고 도식화해 논점을 찾아내는 분석력, 그 문제가 독특하게 요구하는 세분화된 법 지식을 찾아낼 수 있는 순발력, 그렇게 찾아낸 법 지식을 세밀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이것을 가르치는가? 로스쿨은 소크라테스 방식 등을 사용해 스스로 기초적인 법률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여러 법률분야에 걸쳐 반복해 수행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이런 교육을 3년 동안 받으면서 분석력·순발력·응용력이 체화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J.D.과정과 LL.M과정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J.D.과정의 교육목표가 능력의 단련이라면 LL.M 과정의 목표는 지식의 습득이다. 대체로 J.D.과정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LL.M 과정은 학자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3년간 분석력·순발력·응용력이 체화시키는 과정은 J.D.과정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한 중요한 교육으로는 △로스쿨 1학년 때 법학방법론을 배우는 과목인Legal Research and Writing(법률 연구와 작문)과 △여기서 배운 법학방법론을 스스로 응용해 법률논점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식 수업방식이 있다.

이 두 가지 교육에서 로스쿨 교육을 가능케 해주는 전제가 있다. 바로 판례의 무제한 공급이다. 필자가 캘리포니아대 로스쿨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점은 대형 컴퓨터 실습실에서 미국의 모든 판례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사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Legal Research and Writing 과목에서는 학생들이 법률문제에 대한 해답을 판례의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찾아낸다. 필자가 로스쿨 1학년 때 주어진 과제 중 “실제 손해에 비해 계약 위반 시 적용되는 손해배상예정액(위약금)이 너무 과다하게 책정되면 무효가 된다. 여기서 ‘너무 과다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 하는가”를 알아오는 과제가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의 현재 법학 강좌에서는 이를 ‘가치판단’내지 ‘이익형량’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법원 마음대로’라는 냉소적인 코멘트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판례를 통해 더욱 세밀한 답을 찾도록 요구한다. 모든 판례들이 학생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판례의 바다에 뛰어들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로스쿨은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한 학장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법이 교과서로 잘 정리돼 외울 수 있다’란 인식이 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교과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유효한 판례들을 찾아내 해답을 구한다.

소크라테스식 수업방식은 학생과 교수가 판례들을 읽고 와야만 수업이 가능하다. 판례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수들에게도 판례가 무제한 공급돼야 한다. 교수들이 어떤 논점에 대한 판례의 경향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도 이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에서처럼 대법원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상·하급심 판례만을 골라서 공개하는 것은 실제 법의 모습을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숨기는 것이다. 이런 풍토 에서는 로스쿨이 개원되어도 올바른 법학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대법원의 가치판단에 의해 색칠되기 전의 모든 판례가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실제 판사들의 결정 행태를 알 수 있다.

매년 대법원에 올라오는 수만 건의 상고를 대법원이 다 결정할 수 없다. 대법원이 판단을 내린 문제라도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하급심의 결정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로스쿨에서는 모든 판례를 공부하면서 하급심의 결정이 상급심과 어떻게 다르게 분포되는지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판례의 경향을 정확히 공개해야 하는 이유는 좋은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변호사가 되면 하급심의 결정이 대법원 판단과 다를 수 있음을 예측해야 한다. 좋은 변호사란 의뢰인의 소송을 이겨주는 변호사가 아니다. 의뢰인이 소송여부를 판단하도록 자문해 줘야 하고, 하급심에서의 실제 승산을 어느 정도 계산해줄 줄 알아야 좋은 변호사이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21세기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과거에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그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것이 교육이었다면 미래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가는 것이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로스쿨 교육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한국대학신문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8-08-04 오전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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