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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가 ‘차미리사’를 만나다
한상권 교수 <차미리사 평전> 발간…덕성학원 설립자의 치열했던 삶 복원
일제 강점기 여성해방과 민족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한 잊혀졌던 독립운동가의 삶을 오롯이 복원한 책이 나왔다.


<차미리사 평전>(푸른역사 펴냄)은 학교법인 덕성학원 설립자인 차미리사의 조국과 여성교육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되살렸다.


다섯 아이를 모두 잃고 오십 줄에 들어 얻게 된 아이가 딸이었기에 ‘섭섭이’로 불렸던 차미리사는 열일곱에 결혼하지만 3년 만에 남편과 사별, 여섯 살 된 딸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스물 셋의 나이에 유학을 떠나 중국과 미국에서 수학한다.


서른넷의 나이인 1912년 귀국, 교육운동에 투신한 차미리사는 여성 중에서도 특히 배움의 기회로부터 소외된 가정부인에 주목, 전국 순회 강연회에서 모은 성금으로 청진동에 사옥을 마련하고 부인야학강습소의 이름을 ‘근화학원’이라고 칭한다. 덕성학원의 뿌리인 근화학원은 1925년 근화여학교로 승격된다.


“고등교육보다 보통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그는 “이론 교육보다 실천 교육이 중요하다”며 실업교육을 강조했다. 여성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경제적 권리를 확보해야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늘 여학생들에게  “남자의 덧붙이가 되지 말라. 기생충 노릇을 말며 약자란 소리를 듣지 말라.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평생을 완전히 독립하여 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라는 근화여학교의 교훈대로 차미리사는 주체성과 창의성을 강조한다. 

중국 유학 시절 걸린 뇌 신경병 후유증으로 귀가 어두워져 평생 남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후견인 역할을 했던 윤치호의 말대로 “서울에 있는 한국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듣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한 여인이 부유하고 교육받은 남자나 여자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그를 올바로 기억해 주는 사람은 한동안 없었다. 새천년 들어 덕성여대가 극심한 학내 분규를 겪으면서 비로소 차미리사는 주목받기 시작했고, 사후 47년 만인 지난 2002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의 진면목을 독자에게 소개한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는 평교수협의회장 당시 부당하게 해직된 동료교수의 복직 운동을 주도하다 재임용에서 탈락됐다가 복직된 인물.  이 과정에서 덕성학원이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세운 민족사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한 교수는 8년여 동안 관련 사료를 모아 평전을 집필하게 됐다. 한 교수는 “해직으로 인해 집필하게 된 책을 늦게나마 내놓게 돼 ‘오래된 약속’을 지키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책 말미에 ‘여자들도 몸을 우리들 사업에 밧치라 그 뒤에 여자의 권리를 웨치라’, ‘조선여성이여 자립하라’ 등 차미리사가 남긴 글을 원문으로 만나 볼 수 있다. 

값 1만 8000원.


 

조양희 기자 (yanghee@unn.net) | 입력 : 08-08-12 오후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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