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우리대학에는 교비해외파견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름의 선발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5년이 지날 때마다 다른 나라 대학을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지난 1년을 미국 앨라배마주 타스칼루사(Tuscaloosa)에서 보냈다. 타스칼루사에는 앨라배마주에서 가장 큰 대학인 앨라배마대((U of Alabama)가 있다. 처음 미국행을 작정했을 때부터 앨라배마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인연은 그렇게 연결되었다.
앨라배마대로 나가게 되었다는 소리에 걱정하는 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노랫말 그대로 남부의 깊고 멀고 외딴 동네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하긴 그렇다. 한국에서 가장 먼 미국 직항노선을 타고 애틀란타에 떨어져, 자동차로 다시 다섯 시간을 달려야 닿는 곳이니 말이다.
앨라배마의 형편이 그렇다 보니, 주립대인 앨라배마대 역시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우리가 흔히 들어 알고 있는 명문대학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독특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학교도 아니었다. 최근에 총장이 바뀌고, 학교를 확장하는 데 공을 들여 날로 학생수가 늘고 규모가 커지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특별히 더 좋은 대학이 되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학 정원을 늘림으로써 전에 비해 학력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내가 있던 1년 동안만 해도 캠퍼스의 인구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학부 학생들 또한 공부에 열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라배마대는 나름 좋은 학교였다. 북동부지역의 여러 대학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 대학은 나름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다른 미국대학들이 어떤지는 몰라도 우선 이 대학은 지역사회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산학연계나 관학연계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되어 온 문화적 차원의 문제였다.
앨라배마대는 단지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양성하고 그들로 하여금 지역사회를 이끌도록 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었다. 이렇게 지역을 주도하는 앨라배마대의 한 모습은 대학 풋볼팀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앨라배마의 가장 큰 도시는 애틀란타지만, 애틀란타에는 프로 야구팀이나 프로 풋볼팀이 없다. 야구와 풋볼은 미국인들의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프로팀이 없는 앨라배마의 주민들은 그런 까닭에 앨라배마대의 풋볼팀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상당수 미국인들에게 풋볼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지역을 통합하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다. 앨라배마대의 풋볼팀은 적어도 앨라배마 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런 까닭으로 앨라배마대의 최근 가장 큰 투자라면 아마 프로팀 감독 경력의 헤드 코치를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영입한 일이었다. 물론 이는 이들의 문화적 맥락 바깥에서 보면 한편 이해하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앨라배마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매우 중요하고 또 당연한 결정이다.
물론 풋볼을 통해서 가장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앨라배마대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역민의 삶과 문화에 넓고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지역방송과 지역언론이 그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대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나 지역 전체에 고르게 퍼져있는 앨라배마 출신의 인사들, 지역의 문화교육센터로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음은 우리의 지역대학들에게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를테면 대학 교육방송국의 프로그램이 지역의 유선채널로 방송되고 그 경험은 APT와 같은 지역공영방송으로 연결된다. 물론 대학신문의 경험과 인력 또한 지역신문으로 연결되어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
세상살이는 하나의 모습으로 하나의 길만 쫓지 않는다. 대학이 그런 세상 속에 있는 한 대학의 모습 또한 하나로만 정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을 평가하고 대학의 의미를 되새기는 잣대를 하나로 응집하려는 생각은 한편 어리석고 한편 무모하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들을 생각하면 이 어리석고 무모한 생각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하긴 우리의 대학 정책이 그리고 대학을 보는 우리의 눈이 대학을 외길로 내몰았는지 모른다. 앨라배마대에서 나는 지난 1년 동안 대학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 안에서 우리 대학이 진정 가보지 못한 또 다른 길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