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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가 학문육성 정책 세워라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장(상명대 교수)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6일 대학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과제 45개를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자율화’에 따라 대학 전임강사 제도가 폐지돼 ‘조교수?부교수?교수’의 3단계로 단순화 됐고, 내년부터는 대학 간 공동학위 과정이 운영돼 서로 다른 대학 졸업장을 동시에 수여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 중에서 대폭 확대된 대학의 학과 정원 조정 권한이 눈길을 끈다. 대학의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 간 양극화 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원·교사·교지·수익용 기본재산 등의 확보율을 모두 전년도 이상 유지해야 학과 정원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본교와 캠퍼스별 교사와 교지 확보율을 각각 전년도 이상 유지하고, 교원확보율은 본교와 캠퍼스를 합쳐 전년도 이상만 유지하면 자체 조정이 허용될 예정이다.

학과 정원 조정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거론되고 진행되기 시작했던 대학 구조조정 가운데 하나다. 많은 대학들이 이미 인기학과에 예산을 집중하고, 비인기 학과는 예산지출을 줄이기 위해 축소하거나 또는 아예 폐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자율화 조치가 실행되면, 대학의 학과 판도에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학과정원 개편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단국대는 2007년부터 독문과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재학생이 졸업하면 학과를 폐지할 계획이다. 한양대도 2007년에 서울?안산캠퍼스의 독문학과를 통합하고, 정원도 절반가량 축소했다. 성균관대는 사회복지학과 폐지를 추진하고 있고, 건국대도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EU문화정보학과와 히브리?중동학과를 2009년부터 폐지하려고 하고 있다. 건국대의 히브리?중동학과는 1991년 이스라엘을 연구하는 히브리학과로 생겨났다. 이후 2005년 중동지역까지 포함하도록 현재 명칭으로 확대된 것인데, 4년도 안되어서 폐과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과는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유일한 학과지만, 건국대는 취업난 여파로 전공학생이 줄어들어 폐과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동국대의 학과정원 개편안은 더욱 구체적이다. 동국대는 입학성적과 경쟁률, 재학률, 취업 및 진학률을 평가해 하위 15%학과의 입학정원을 10~15%씩 줄이는 입학정원 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감축한 입학정원은 평가 결과가 우수한 학과에 배분하고, 계속 평가 결과가 나쁜 학과의 경우 폐과도 단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국립대에서도 가시화 되고 있다. 순천대는 국립대 가운데 처음으로 화학?물리 등 기초과학 분야 학과를 없앴다. 대신 바이오 분야와 교육 분야를 강화시켜 지역 특생에 맞게 구조조정(61개 전공단위에서 52개 단위로 축소)했다. 서울대도 국사학과와 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구조조정 차원뿐만 아니라 기초학문 보호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국?사립대학을 막론하고 대학이 다양한 학문의 공동체로서 뿌리를 내리면서 역량 있는 전문직업인을 배출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학문정책과 취업 대책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그런데 정부는 대학 진학생이 줄어들 것이 명확한데도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앞세워 대학 팽창을 조장하더니, 이제는 시장 만능주의 논리로 대학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살길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학문육성 노력 없이 시장에만 학과조정을 맡긴다면, 대학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한국대학신문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8-09-18 오후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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