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치의 모순이다. 현란하게 각광받았던 신자유주의가 자체 모순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유수 금융회사인 리만 브러더스 프레디맥 패니메이 그리고 AIG보험이 파산 상태이거나 긴급구제를 요청하는 숨 가쁜 상황이다. 경영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가 지닌 구조적인 모순이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가공할 만한 금융자본주의를 번창케 했다. 정부 역할은 축소되고 국가의 재정적 기능은 줄어들었다. 레이거노믹스를 주축으로 한 실물경제의 성공은 이념 대결에서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되는 덤까지 얻어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극치를 향해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산물을 만들어냈다.
경제는 시장에 맡기면 됐고, 다른 일방 파생상품을 주축으로 한 금융시장의 화려한 곡선을 따라 춤을 추면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시장은 그 본보기로서 화려한 실적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부실주택자금’이라는 바이러스가 생겨났다. 그 파장의 주름살이 거대 회사들을 잡아먹는 치명상을 일으킨 것이다.
부시 정부는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방출해 이 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 우리가 10년 전 써먹었던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빈 깡통이 된 관련 기업의 부채를 떠안고 정부가 주인이 되어 신용 붕괴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벌써부터 미 의회 쪽에서는 회의론이 일고 있어 그 전도가 만만치 않다. 유럽연합이나 아시아 일각에서도 정부개입의 이 방식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초유의 금융위기라 불리는 이번 사태는 우선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수명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수많은 정치가들에 의해 선창되어 온 것이 신자유주의다. 이명박 대통령도 모든 국공유 체제의 회사나 기금을 민영화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고 능률을 제고시키는 길로 나가겠다는 다짐이다.
그 초두에 미국판 금융위기는 혼란이 아닐 수 없다. 무려 7000억원에 달하는 ‘정부개입’이 시작되려는데 다른 쪽에서는 민간에게 ‘해방’시키려는 구도다.
정부의 도덕적 해이를 치유하려 했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역으로 민간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들였다. 리만 브러더스의 지난해 CEO보수는 4500만 달러였다. 어쨌든 신자유주의는 대본의 수정 없이는 불확실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기업의 욕심도 같다. 어쩌면 이 욕구가 빚은 결과가 현재의 금융위기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공해와 지구온난화는 위기를 압박하고 있는데 금융이라는 시스템이 무한 팽창하고 있다. ‘인간성의 황폐화가 빚어내는 재앙’이라고 하는 학자의 말에 귀 기울여 봄직도 하다.
인간은 이윤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그 기업의 브랜드와는 상관없는 윤리성, 도덕성에 있다. 사회적 구조가 통신 혁명에 의해 변화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대중의 분노의 표출이라 보는 게 옳다. 소비제품에 대한 국제적 고발이나 규탄은 시대적 조류의 한 끝을 보여 주는 것뿐이다. 국공유 기업의 CEO들의 수억대 월급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시 대통령의 언명은 불을 끄는 데 어느 정도 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정부’와 ‘7000억 달러’라는 두 단어만을 기억한다. 11월의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계도 가부간 결론을 내려야 할 판이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시작인지도 모른다.
절망적 위기는 10년 전에 우리가 겪어 본 바가 있다. 그리고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는 교훈을 배웠다. 심리적 동기가 일으키는 행위의 위대함이다. 금융이 흔들리고 석유값이 올라가고 모든 경제의 지표들이 교란상태가 되면 심리적 압박감이 커져 행동 통일이 나타난다. 경제적 번영이 얼마나 ‘장미빛 인생’이었던가를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