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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공동기획] 표절의 사각지대 ‘의심스러운 연구’
표절이나 데이터 조작 등 연구부정 행위는 비단 국내 연구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명백한 연구부정행위보다, 부정행위 유무를 가려내기 힘든 ‘회색지대’가 더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학계에 따르면 표절을 포함한 연구부정행위 발생비율은 1% 이내다. 이는 의도적이거나, 고의적으로 이워지는 연구부정행위로, 실제로는 연구부정행위를 가려내기가 애매한 회색지대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논문 표절 의혹이 대부분 학계로부터 ‘혐의 없다’는 결론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부정 행위가 회색 지대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부정행위에는 연구 데이터의 관리 소홀이나 부주의한 연구, 빈약한 연구 설계 등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 3,24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네이처 2005년 5월호)에 따르면, “명백한 연구부정행위가 아닌 ‘의심스런 연구 수행’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심스런 연구 수행’의 양상은 ‘연구진행과정의 불성실한 기록’이 25.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연구지원 기관의 압력으로 연구방법, 결과를 변경(15.5%)’,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 특정데이터를 지움(15.3%)’, ‘잘못된 줄 알면서 연구모델을 그냥 사용(13.5%)’ 등이었다.

명백한 연구부정행위보다 ‘의심스런 연구 수행’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더욱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연구 부정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규제의 사각지대에 머물면서, 연구윤리의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표절 가이드라인 왜 만들기 힘든가 = 연구부정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표절의 경우에도 기준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조선대 조은희(생물교육과) 교수는 “연구윤리의 문제는 문제 자체보다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그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명확하게 표절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영역과 올바르게 작성된 글이라고 인정되는 영역 사이에 ‘회색지대’가 상당히 넓어 기준을 어떤 방식으로 정하는지에 따라 표절 여부가 갈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최근 학술진흥재단이 인문사회 분야 표절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기초 연구에서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학진의 이 연구에서는 ‘주요 단어를 중심으로 6단어 이상이 연쇄적으로 반복되면서 핵심적 아이디어를 실질적으로 가져다 쓰면서 출처를 표시하지 않는 것’을 표절로 규정하자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각 학문 분야별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에 따라 구체적인 부분에서 지침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왔고, 연구윤리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도 이 기준에 대한 상당한 논란이 일었었다.

학진 기초 연구를 수행한 서울교대 이인재(윤리교육과) 교수는 “각 학문 분야별로 관행이라는 게 있다. 특히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계열, 의대 등은 각각 문장이나 도표, 글을 어디까지 표절로 봐야하는지 이견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연구윤리지침을 공개한 서울대의 경우에도 이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서울대는 두 분장 이상일 경우 표절로 보고있지만, 최종 표절 여부는 해당 전문 학회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표절 여부보다는 표절의 강도나 의도성 등 ‘얼마만큼 표절을 했는지’도 봐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인재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최소한의 규정이고 중요한 것은 표절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얼만큼 표절 했는지도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진의 기초 연구를 포함해 지난 2월 최종 결과보고서를 받아 이를 바탕으로 학문 전분야에 준용할 수 있는 표절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올해 안으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 자기표절에도 회색지대 있다 =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자기표절(중복게재)’의 경우에도 회색지대에 해당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자기표절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확대 해석할 경우 오히려 심화 연구를 수행하는 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기표절을 연구부정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국가별로 다소의 차이가 있다. 일부 유럽의 국가에서는 명백한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옳은 행위는 아니지만 부정행위의 범주에는 넣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재 서울대의 연구윤리 지침에서만 ‘이중게재’로 명문화되어 있는데, 서울대는 ‘이중게재’를 ‘연구부정행위’와 구별해 연구부적절행위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앞선 논문의 주요 내용을 중복해 새로운 논문인 것처럼 발표해 연구비를 취한다거나 동일한 결과를 2배로 증폭시켜 발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학문 체계를 왜곡시키고 공정한 평가를 저해하는 행위로 판단하는게 학계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최근 표절 논란이 잇따라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표절이 전보다 쉬워진 점과 올바른 글쓰기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주로 지적한다. 특히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에서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부터 표절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은희 교수는 “서구에서는 초중등 학교에서 과제를 부과할 때 인용 방법을 포함한 작성 방법에 대한 교육을 하고 표절이 적발될 경우 엄격한 학칙을 적용한다”면서 “우리나라 조기유학생들이 해외 학교에서 리포트를 베껴 제출해 문제가 된 사례가 자주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질적 평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대학에서도 과제 표절의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표절이 쉬워진 때문이다. 여기에 학생들의 윤리 의식이 전반적으로 낮아진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는 몇 해 전부터 상업적인 논문 표절 검색 프로그램(Turn-it-in)이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부산대와 고려대 등 국내 일부 대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보고서 표절 검색 프로그램(DEVAC) 등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연구자에 대해 평가시 지나치게 양적인 평가에 치우친 것도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를 조장한 측면이 있지만, 이 또한 논란이 된다.

이인재 교수는 “일반적으로 양적 위주의 평가시스템이 연구자들로하여금 부정행위를 저지르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며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연구비와, 승진 등을 위해 무의식 중에 연구부정행위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대학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지만, 연구자들을 평가 할때 양적 평가를 제외하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자기 논문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인용이되는가 등을 평가점수에 반영하는 등 질적 평가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스 ■ 해외 연구윤리위반 사례

-‘색칠한 쥐 사건’ = 1974년 미국 뉴욕 슬로언 케터링 연구소에서 피부암 연구 면역학자인 윌리엄 서머린이 저지른 데이터 조작 사례다. 서머린은 흰 쥐의 피부에 검은 색을 칠해 흰쥐에 이식해 배양에 성공한 것처럼 가장했다. 조작을 시인한 그는 “정신적 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라는 연구소측의 압력, 힘든 임상과 실험의 부담이 겹쳐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서머린은 해고됐으며, 그의 상사이자 연구소장이던 저명한 면역학자 로버트 굿도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례는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최초의 데이터 조작 사례로, 이후 1980년대까지 반복됐던 부정행위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줬다.

-‘존 다시 사건’ = 1981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심장병학 연구자였던 존 다시는 여러차례 연구 데이터를 조작하다가 적발됐다. 그의 연구 부정 사건은 현직인 하버드대 뿐 아니라 예전에 일했던 NIH와 에모리대학도 조사위원회를 꾸리면서 이목을 끌었다. 조사 결과 그는 노트르담 대학에 다니던 학부 시절부터 광범한 기만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형적인 ‘데이터 날조’였다. 그의 논문 100여편의 상당수가 철회됐으며, 이 사건은 ‘정신 나간’ 연구자가 혼자 저지른 일이 아니라, 연구기관, 공저자, 학술지 등 여러 기관이 개입된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공저자들이 논문 책임을 부인하고 나서면서, 저자 표시 문제의 윤리성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얀 헨드릭 쇤 사건’ = 2002년 독일, 유기물 반도체 소자 분야의 획기적인 기술을 연달아 개발하면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신진 과학자로 찬사 받은 얀 헨드릭 쇤은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17편을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쇤의 연구결과에 수상한 점을 발견한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부정이 밝혀졌다. 쇤의 연구는 실험기록이 보관되지 않았으며, 관련 파일이 지워지고, 실험 샘플도 훼손됐으며, 조사 결과 최소 16편의 논문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쇤은 해고됐으며, 독일 콘스탄트 대학은 2004년 쇤에게 수여한 박사학위를 박탈했다. 이 사건은 민간 대기업에 속한 연구소의 경우도 연구부정 방지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다이라 가쓰나리 사건’ = 2005년 일본, 동경대 교수이자 유전자기능연구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는 RNA의 권위자인 다이라 가쓰나리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네이처에 12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으로 2000년 타임지에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 갈 500대 세계인’의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논문에 대해 ‘재실험에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연구자들의 의혹이 학회에 접수되면서 동경대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착수해 “실험결과를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었고 따라서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결국 그의 논문은 조작으로 결론 났고, 그의 실험실은 해체됐으며, 대학원생 지도자격이 박탈됐다.
한용수 기자 (unnys@unn.net) | 입력 : 08-10-02 오후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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