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6일 취임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교육수장’이나 마찬가지다. 7월 7일 내정됐지만 18대 국회 파행으로 한 달 만에야 인사 청문회 없이 취임한 안 장관은 이후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 국립대 재정회계법 제정 등 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를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요구할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혀 ‘학교 서열화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섰으며,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과 관련해서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치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본지는 15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교육부도 원래 바쁜데 과학기술부까지 합쳐져서 굉장히 바쁘다”는 안 장관을 지난 9일 만났다. 안 장관은 이날도 청와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들과의 조찬 간담회에 이어 대통령을 대신해 역사NGO세계대회에 참석하는 등 외부 일정으로 인터뷰 직전에야 집무실로 돌아왔다가, 인터뷰 직후 또 다른 외부 행사 참석을 위해 급히 자리를 뜰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한국외대 총장을 두 번이나 지냈는데, 고등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대학에 들어가는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 전체가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일류대학 가라’ 이렇게 시작한다. 학원 보내는 것이 전부 대학 보내기 위해서다. 학원에 의존해 대학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수십 년 동안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입시를 대교협에 이관하면서 주문한 것도 국민들이 학원에 의존해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일이 없도록 입시안을 만들어 달라는 게 가장 크다.
-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이 논란이다.
새삼스럽게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2002년도에 지금의 교과서가 나온 이후 고쳐진 게 300회가 넘는다. 그런데도 지금 와서 보니까 또 바꿀 게 많다고 해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기준을 정해 그 기준에 맞춰서 합당하면 그게 ‘좌’든 ‘우’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거고,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것은 고쳐나가는 기준을 만들자 해서 그 기준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라고 선언한 거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이 처음부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 교과서는 정사(正史)가 되어야 한다.
- 이번 정부에서도 가장 큰 쟁점은 역시 사립학교법 재개정이 될 것 같다.대학 자율화 추진과제와 사학법 운영 과정 상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재개정의 필요성은 갖고 있다. 현행 사학법은 성격이 다른 초·중등 및 대학을 함께 포괄하다 보니 개별사학의 다양한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지난 해 개정된 개방이사제와 대학평의원회를 포함하는 사학법 재개정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협의할 사항이다.
- 대학 숫자는 400여개에 이르지만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사립대학 경영 컨설팅팀을 구성해 자율적인 통·폐합과 인수합병을 유도하고, 독자적 생존이 어려운 한계 사학에 대해서는 다양한 퇴출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또 대학 설립 요건과 심사 기준을 강화해 부실 대학의 설립을 사전에 막음으로써 ‘학생 수 감소’라는 환경변화가 대학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게 대학의 요구다.
예산당국에서 국가재정 운용의 경직성 등을 이유로 교부금법 도입을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는 도입을 적극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 앞으로 교부금법 제정을 포함해 대학 재정 지원이 보다 확대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대학에 대한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기부제도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 대학의 자체 재원확충도 적극 지원하겠다.
- 소액 기부금 세액 공제 도입이 지지부진하다.
현재 부처간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한나라당이 기부금 세액공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및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관계 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 아울러 학교법인의 법인세 중간예납 면제, 교육·연구 관련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 감면(80%) 확대 등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 최근 서울대 발표 이후 국립대 법인화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모든 국립대를 강제적으로 일시에 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은 없다. 지난 정부에서는 법인화를 추진하는 모든 대학에 적용되는 통칙법적 성격의 ‘국립대학 법인화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현 정부에서는 여건이 됐다고 판단하는 국립대가 법인화를 신청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개별 법률’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다. 여건이 되지 않는 국립대는 교비회계제도 도입 등 자율화 방안을 먼저 추진할 계획이다. 우려가 많은데, 법인화가 되더라도 정부재정지원이 축소되지는 않는다.
- 로스쿨 정원에 대해 아직도 불만이 많다.
지금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고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시작은 해야 한다. 그리고 2016년까지는 사법고시 보는 학생과 로스쿨 졸업생이 동시에 배출되기 때문에 (법조인) 숫자가 많아진다. 정원을 늘리든 변형을 하든, 중·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봐야지 당장 내년에 고친다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다.
- 1~2년 내에 로스쿨 정원이 증원되기는 어렵다는 말인가.
그럴 것 같다. 지금 막 생겼는데 생기자마자….
- 포뮬러-펀딩 방식의 재정지원이 대학 특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포괄적 재정집행을 보장하는 교육역량강화사업을 통해 개별 대학은 자체 실정을 감안한 선택과 집중에 따라 강점 분야에 재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하는 등 자율적 특성화에 나설 거라 본다. 대학 내 ‘나눠먹기’식 재원 배분을 막기 위해 교육프로그램 개선, 산학협력, 국제화 등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핵심 분야별로 전문가 컨설팅단을 구성해 대학의 사업계획을 검토·자문할 방침이다. 또, 대학정보공시제도를 통해 특성화 수준과 성과 등을 공개하면 지속적인 대학 특성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지방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역량강화사업 외에 내년부터 연간 1000억원을 광역경제권 거점대학 인력양성 사업에 투입한다.
-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을 통합하는 데 대해 인문·사회 분야 학자들의 우려가 크다.
한국연구재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인문사회 분야의 홀대인데, 거꾸로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분야 연구의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그 독립성을 인정해 통합재단을 설계할 때 인문사회본부를 별도로 설치하고, 대학연구지원의 특성을 감안해 대학연구진흥본부를 설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다만, 균형과 조화는 단순한 산술적 균형이 아니라 각 분야의 학문적 특성과 국내외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 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어떤 소신을 갖고 있나?
우리처럼 돈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모든 대학이 다방면에 걸쳐 골고루 잘 갖춰진,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가는 것은 무리다. 더군다나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 대학의 생존, 이것은 특성화에 있다고 본다. 다방면에 투자하고 연구하는 대학도 있겠지만 특성화 대학은 그 중에서도 강점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서 그 분야만큼은 대한민국에서 1등, 더 나아가 세계에서 1등이라는 정도의 긍지를 갖고 매달려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일류대학, 이류대학이라는 개념이 조금 희미해질 것이다.
대담=이인원 본지 회장 / 정리=권형진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안병만 장관은…
1941년 충북 괴산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법과대학(행정학사)을 졸업한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1968년)로 출발해 1975년부터 2006년 2월까지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외대 재직 기간 동안 학생처장·기획조정처장·대학원장·부총장 등 요직을 두러 거쳐 총장(1994~1998년, 2002~2006년)을 두 번 역임했다. 2005년 3월에는 임기 1년의 한국대학총장협의회장에 취임했다. 한국행정학회장(1994년)과 한국정치학회 교육위원장(1995년)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정치학회 및 한국행정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2006년 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과 한미교육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5월부터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다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임명됐다. 한국정치학회 학술상(1987년), 콜롬비아정부 공로훈장 대관장(1998년), ‘Applied Psychology : An International Review' 최우수논문상(2003년), 헝가리 공훈십자훈장(2005년), 플로리다대 올해의 우수 동문상(2005년), 루마니아 국가교육분야 최고훈장 등의 상훈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