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인증 메이저 대학은 외면
올 들어 서울대·고려대 등 신청 철회 잇따라
KAIST·포스텍도 “인증 안 받아도 불편 없어”
공학교육인증(이하 ABEEK)이 도입 8년째를 맞고 있지만, 서울대·KAIST·포스텍 등 메이저 대학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최근엔 고려대 공과대학 2개 학과가 ABEEK 신청을 철회하기로 해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지 주목된다.
최근 고려대 전지전자전파공학부와 화공생명공학과가 ABEEK 신청 철회를 공식화 했다. 정창성 전기전자전파공학부장은 “공학교육인증원(공인원)의 △설계학점에 대한 과도한 요구 △프로그램 교육목표 △학습성과 측정을 위한 요구 사항 등 우리 학부가 지향하는 교육목표와 부합하지 않은 측면이 많아 ABEEK 신청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특히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와 공인원 측은 학위 명칭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공인원 측은 인증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에겐 ‘공학사(전기전자전파공학)’ 학위를, 비인증 프로그램을 이수자는 전공표기 없이 ‘공학사’를 수여해 학위 명칭을 구별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ABEEK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학부에선 학위에 전공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학부 내에선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공인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 커졌다. 대신 성적증명서에 ‘ABEEK 프로그램 이수’ 문구를 넣어 인증과 비인증을 구분하자고 제의했으나 공인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도 지난 4월 ABEEK 신청을 철회했다. 공인원이 인증·비인증 학생에 대한 학위 명칭을 달리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우일 기계항공공학부장은 “비인증 학생에겐 ‘공학사’를, 인증 학생에게는 ‘기계공학사’ 학위를 주라고 하는데, 이는 학교의 고유 재량에 해당한다”며 “전기공학부는 애초에 공학인증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전기공학사 학위를 받고 있다.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공인원의 요구사항은 또 있었다. 프로그램 학습평가를 위한 졸업시험과 매학기 강의내용의 업데이트를 요구했다. 이우일 학부장은 “이미 용도 폐기된 졸업시험을 ABEEK만을 위해 부활시킬 순 없다”며 “공인원이 공학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ABEEK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 온갖 디테일한 것을 통제하는 등 관료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와 조선해양공학과도 ABEEK 신청 철회를 요구중이다. 이우일 학부장은 “토목·건축 등 해외 수주를 위해 공학인증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학과를 제외하면, 많은 학부(과)들이 ABEEK 신청을 철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총 9개 학부(과)가 예비인증 상태인 서울대는 기계항공·화학생물·조선해양·원자핵공학과 등 4개 학부(과)가 ABEEK 신청을 철회하거나 철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공인원측은 학위 명칭의 구분은 국제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라 바꿀 수 없고, 졸업시험은 평가도구의 하나로 제시한 것일 뿐 강제할 뜻은 없었다고 설명한다.
강상희 인증사업팀장은 “학위 명칭을 달리 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워싱턴 어코드 회원국으로서 지켜야할 기준에 해당한다”라며 “졸업시험은 프로그램 학습평가를 위한 평가도구의 한 방안으로서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학습평가 12개 항목은 공학도로서의 여러 가지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교과과정 이수만으론 이를 평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서울대와 고려대의 신청 철회는 ABEEK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ABEEK은 지난 2006년 삼성전자가 “공학인증을 받은 학생에게 10%의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밝히면서 대학가에 확대됐다. 2008년 4월 현재 21개 대학 133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KAIST나 포스텍은 당분간 ABEEK을 신청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준비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2~3년)을 들여야 하고, 굳이 ABEEK을 받지 않더라도 학생 취업에 불이익을 받진 않는다는 뜻이다.
KAIST는 서남표 총장이 공인원 원장을 맡고 있음에도 ABEEK 신청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용훈 공과대학장은 “현재까지 ABEEK을 받지 않은 데서 오는 불편함은 거의 없는 반면 ABEEK 신청을 위해 들여야 하는 업무부담은 크다”며 “현재 ABEEK을 받는 대학에서도 여러 가지 불만이 표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텍도 마찬가지다. 이진수 교무처장은 “ABEEK 인증을 받는 대학의 얘길 들어보면 2년 이상 준비에 공을 들여야 하는데 교수 연구에 지장이 될 정도로 시간을 쏟을 수는 없다”며 “인증 절차를 간소화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교육혁신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서류작업 등에 대한 과도한 부담 없이 인증 받을 길을 터달라는 요구다.
공인원도 대학의 이런 의견을 검토할 의향이 있다. 다만 ‘워싱턴 어코드’ 틀 내에서 개선방향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워싱턴 어코드란 미국·영국·호주 등 6개국이 1989년 체결한 공학계열 졸업자격의 상호인정 협정이다. 현재는 12개국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지난해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김문겸 공인원 수석부원장(연세대 교수)은 “현재 ABEEK에 대한 대학의 여러 가지 불만사항을 듣고 있고 개선할 점이 있음을 인정한다”며 “평가절차를 간소화해 달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검토할 뜻이 있지만, 개선방향은 워싱턴 어코드 안에서 국제적 기준에 맞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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