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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간 강사는 ‘벤치 위의 나그네’
김서영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대학별 시간강사 의존율 및 임금 관련 문제를 지적한 <한국대학신문> 제 674호 기사에 덧붙여 교강사 휴게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2002년 귀국 후 2008년 3월 임용될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간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무리 시간을 맞추려 애써도 매번 20분은 일찍 도착하여, 학교 앞 커피숍이나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부터 가급적 멀리 놓인 벤치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쓰며 식은 커피를 홀짝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학에서 과에 소속된 교강사 휴게실을 만났고 나는 매주 그 아늑한 집을 방문하게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 공간은 나를 사람으로 맞아주었다. 무거운 짐을 놓을 수 있었고,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며, 몇 대의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었다. 양손의 무거운 짐들을 전철 화장실 구석에 놓은 채 바쁜 마음으로 화장을 고친 후 몇 십분 후 들어서는 강의실에서 나는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없었다. 다시 짐들을 싸고 다음 학교로 이동하는 순간 만났던 학생들에게 나는 당당하게 인사하지 못했다. 믿어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나를 맞아주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대학은 모든 강사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숫자의 교강사 휴게실을 만들어야만 한다. 맞아주는 집이 없는 곳에서 주인을 연기하며, 나는 선뜻 학생들을 “내 아이들”이라 부를 수 없었다. ‘내 공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내 학교’, ‘내 학생들’이 가능해지며, 그렇게 될 때에만 거침없는 젊음으로 경계를 허무는 강의가 가능해진다. 맞이하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을 보듬는 일이란 항상 마음 한 구석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힘든 과업이다. 그렇게 매번 시작하는 마음을 갖추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일상은 어느새 반복이 되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맞이하는 일은 호머의 『오뒤세이아』 중심에 배치된 주제이며, 우리는 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이야기를 신화라 부른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 함께 하는 이야기가 가능한 곳에서 서로 소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마틴 루터 킹의 꿈을 우리는 신화로 기억한다. 그리고 신화의 세상조차 자본의 논리를 따르게 된 21세기의 어느 날 우리는 다시 그 꿈들이 만드는 신화의 세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무릇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결정들이 모여 이루어지며 그 때 세상의 변화가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던가? 대학들은 구조와 체계를 넘어, 학생들과 마주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과 소통할 때 오직 그때에만 무엇인가가 변할 수 있게 된다. 잠시 멈추어 사람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순간, 신화의 세상이 부활하며 떠돌이가 귀향하게 된다.

집이란 맞이해주는 곳인 동시에 배려하는 곳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며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는 공간이다. 교강사 휴게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제기능을 발휘하려면 이와 병행하여 강사와 교수의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작은 변화들이 가능해야하며 대학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시설들을 강사들이 내 집 물건들처럼 편히 쓸 수 있게 되어야만 한다. 무엇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 숙지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가 있어야만 한다.

오늘도 친구는 어디에선가 양 손의 짐들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벤치에서 식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민현희 기자 (mhhph@unn.net) | 입력 : 08-11-17 오전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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