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의 심각한 현상은 증권시장에서 나타난다. 리먼브라더스 사건으로 표면화된 미국 경제의 퇴락은 나스닥의 폭락을 몰고 왔다. 뒤이어 세계 모든 주식시장의 장세가 주저앉았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곧이어 미국에서는 대량 실업 사태가 일어났다. 유례없는 불경기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1930년대의 불황보다 더 심각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주식시세가 주저앉고 환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불안기류가 드디어 실물 경제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KDI의 내년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3.3%다. ‘747공약’으로 탄생한 정부이고 보면 이조차 믿을 수가 없다. 예상성장률 7%가 절반 이하로 꺾이게 되었지만 다들 조용하다.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는 바람에 면책된 것이다. 또다시 예측이 틀려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불경기에 따른 고용감퇴가 현저하다. 지난 10월 취업자 수는 9만 7000명으로 3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올 2월까지만 해도 20만 명 이상을 유지했었다. 그나마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조적인 위기를 느낄 만큼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20~30대에서 줄어든 일자리는 16만 명에 달한다. 20대의 취업자 수는 지난 1996년 6월 통계를 낸 이래 가장 적다.
불경기로 경영상태가 악화되자 기업들은 임시직 근로자를 해고하고 있다. 취업대기자는 58만 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 증가했다. 이 모든 지표는 우리에게도 대량 실업의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고 알린다. 일시적 경기 불황이 아니라 수년을 견뎌 내야 할 장기적인 것이다. 이제 일자리 얻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가 될지 모른다.
가계 경제의 실체적 위험은 바로 실업이다. 어느 대학 총장이 TV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저녁 먹는 자리에서 ‘옷 벗고 먹자’ 소리도 못한다”고. 실업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한다. 급료를 깎여도 좋으니 자리만 보전해 달라는 소리는 소시민적 애원을 넘어 비극이다.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진출 희망자는 수십만 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취업 기회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경제 환경은 점점 더 악화돼 가고 있다. 고용악화가 신규실업 억제로 나타나면 구조적 심각성 또한 커진다. 노동생산성이 노후화되어 생산력이 약화된다. 임금비용은 높아지고 제품경쟁력은 떨어진다. 수출은 약화되고 모든 경제기반은 무너진다. 수출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다.
어떻게 대처해 가느냐가 중요한데 중심축이 되어야 할 정치권은 싸움박질로 시간을 까먹고 있다. 무엇을 의결하고 대처할 것인가에 협상도 합의도 없고 신속하지도 못하다. 3조원의 유가환급금과 4조원의 추경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3개월이나 걸리고 10조원의 감세법안은 낮잠을 자고 있다. 불안정한 기류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 의회이니 300억 달러의 스와프 협정에도 환율은 무반응이다. 범국민적 위기 타개책이 필요한데 주체는 어느 곳에도 없다.
흔히들 대학은 역사의 흐름을 이끄는 주체의 하나라고 말한다. 민주화가 이룩되는 과정을 보면 극명하다. 어쩌면 경제에 비해 정치적 민주화는 간단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완강한 정치권력에 대항한다는 단순 명료한 목표로 사회 전체를 묶어냈다. 경제는 보다 복잡한 구조다. 대량 실업문제에 대학이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학당국이 각 기업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인 일자리 찾기에 나서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총체적 역량을 실업문제에 투입해 볼 필요가 있다.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계약에 대학이 주체가 되는 길이다. 노사관계 취업조건 임금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못할지라도 여론을 일으키고 전파하는 방법이 있다.
그동안 대학은 너무나 조용했다.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그만큼 많은 새 일자리가 일시에 없어진다면 그건 바로 당신의 일이다. 나는 대학이 불경기에 나서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