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학기는 중간고사만 끝났다하면 서둘러 종강을 하게 되는 느낌이다. 올해도 그렇게 어김없이 시간이 흘러 12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창밖 캠퍼스 풍경에는 아직 아름다운 늦가을의 모습이 남아 있지만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겨울은 이렇게 또 오고 있다.
전 지구적인 경기 침체 소식에 모두가 우울한 요즘,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때쯤이면 취업하는 학생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직껏 아무도 반가운 소식을 전해오지 않는다. 눈치들을 보자니 쉴 새 없이 이력서를 내긴 내는 모양인데, 서류심사 통과마저 영 어려운 듯하다. 이럴 때 학생들을 향해 희망을 갖고 노력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어려운 세상이니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정직한 얘기가 될까? 그나저나 나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는 그 어떤 시도마저 헛되이 느껴진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의 정체는 결국 고도의 자본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무한 경쟁의 비정함이요, 그 앞에선 어느 누구도 저항할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이 이 시대 사회 구조이기 때문이다. 서글프게도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사회 구조를 벗어나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구조주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요소는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 파악된다. 부분의 요소는 전체의 구조 안으로 통합되어야만 의미가 있고 비로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정규직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린 요즘의 사회가 젊은 세대를 이른바 ‘88만원 세대’라는 좌절과 절망감 안에 가두는 구조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들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구조주의적 관점은 인간주의를 표방하는 사회학자들로부터 궁극적으로 인간 주체 상실을 가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개인의 노력 부분이 결코 평가 절하되거나 무가치하게 여겨져서는 안 되리라 믿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래서일까. 최근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 현대 사회 구조에 대한 회의와 함께 반작용이 감지된다. 시장 논리를 최고의 가치로 치켜세워온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선두 주자 미국이 어이없게도 오늘날의 금융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 된 가운데 20~30대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사회 구조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은 이를 대변한다. 일례로, 일본에서는 이미 발간된 지 80년이나 된 프롤레타리아 소설이 새삼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고 독일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야말로 케케묵은 ‘자본론’에 젊은 독자들의 관심이 새삼 쏠리는 이유는 작금의 위기를 부른 ‘카지노 자본주의’에 대한 불안과 회의가 그만큼 크기 때문(중앙일보 11월 17일자 31면 ‘분수대’ 참조)일 것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 대학생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고민할 시간 있으면 토익공부나 열심히 해서 점수나 올리는 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교수인 나부터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실용’이 이토록 대세를 이루는 대학가 풍토 역시 구조화된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을 생각하자니 그만 씁쓸한 기분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