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재정 운용의 자율성과 효율성, 투명성을 제고한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이 지난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사실상 정부안이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교과부는 대통령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3일이 지나서야 법안을 공개했다.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보도자료를 배포하곤 하던 관행과는 사뭇 달랐다.
교과부가 공개를 꺼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21일 대통령 재가를 받아 국회에 제출한 국립대 재정·회계법 정부안에 대해 정용하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장(부산대 교수회장)은 “국가는 손 뗄 테니 개별 대학이 수입사업이나 등록금을 인상해 살아가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껍데기만 남은 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나름대로 국립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던 입법예고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법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부 재정지원 축소이다. 입법예고안에는 ‘물가상승률, 국가재정규모 증가율 등을 고려해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한다’라고 돼 있던 내용이 ‘필요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전국대학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안정적인 재정지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원하는 것조차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으로 완화해 사실상 재정지원 축소를 시인했다”고 비판했다. 주차장 사용료 등 ‘국유재산 사용료’를 교비회계 세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과부 약속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위 사진은 지난해 7월 국립대 법인화 저지 범국민 결의대회 모습(사진=대학노조 홈페이지)>
지원은 줄었지만 정부 말처럼 재정 운용의 자율성이 확대된 것만은 아니다. 입법예고와는 달리 최종 확정된 정부안은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 확충비 등 국가가 총액으로 지원하는 출연금은 출연 목적에 따라 편성하도록 변경됐기 때문이다. 재정위원회 기능에서 수익사업과 차입금에 대한 심의 기능을 삭제해 재정 투명성과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전국 국립대에 근무하는 2500여명의 기성회 직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성회 직원들을 교비회계 직원으로 승계한다는 부칙 조항이 최종 정부안에서는 빠졌다. 한정이 대학노조 정책국장은 “만약 정부안대로라면 기성회 직원들은 전원 정리해고해도 되는 상황”이라며 “심지어 기성회비를 교비회계에 통합하겠다는 것이 당초 입법 취지인데 어디에도 기성회계에 관한 언급은 없는 이상한 법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국교련은 즉각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정용하 회장은 “이달 말까지 전국 국공립대 교수 1만600여명 가운데 1만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입법반대 청원을 하는 한편 올바른 국립대 발전방안을 담은 대체법안을 마련해 입법 청원하겠다”고 말했다.
국교련과 대학노조, 교수노조, 공무원노조, 민교협 등이 참여하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역시 ‘국립대 재정·회계법안은 국립대 재정지원 축소 법안’으로 규정하고 범국민 백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정이 국장은 “교과부는 안정적인 재정지원, 고용 승계를 계속 강변해 왔는데 최종 정부안은 입법예고 이전의 최초 시안으로 회귀해 버렸다”며 “교과부가 공개를 꺼린 것은 결국 대학 구성원들이 법안 내용을 알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사안이 있어 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