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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선택의 기로에 서서...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우리의 삶에서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몇 번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오직 한 명의 배우자를 정해야 하고, 하나의 직업과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아마도 대학에서의 학과와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결정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런 결정에서 대체로 본인의 처지와 능력이 그 선택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꿈과 하고자 하는 열정이 그 결정을 가늠하게 된다. 속된 말로 '필이 꽂혀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고3 수험생이 되는 한 여학생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이메일을 받았다. 물리학에 매료된 이 학생은 부모님의 반대로 학과 선택의 고민에 빠졌고, 어느 일간지에서 필자의 글을 보고 급기야 자문(사실은 원군)을 청했던 것이다. 그 학생의 부모님이 물리학과 진학에 반대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대표적 네 가지가 다음이라고 했다. (1) 물리학과는 졸업한 뒤 할 수 있는 게 없다, (2) 넌 여자다, (3) 넌 특별히 천재도 아니다, (4) 우리는 부자가 아니라 널 뒷바라지 해 줄 수 없다.

고등학교 과학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하였고, 선행학습으로 영재 아닌 영재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일반고 학생들이 차근차근 배워서도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자는 필자의 글에 책임감을 느껴 다음과 같이 답신을 하였다. 우선, 많은 인생 경험을 통해서 사랑하는 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조언을 하셨을 터이니 부모님의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진정으로 물리학을 좋아한다면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했다.

부모님의 반대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내 의견을 제시하였다. (1) 물리학 전공자가 유독 취업이 힘든 것은 아니고, 도리어 기초학문의 특성 덕분에 여러 산업 분야에 취업이 가능하다. 어쩌면 과거에 매우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하였는데, 그들보다 돈, 명예, 권력을 훨씬 많이 얻는 이들을 보고 실망하셨을 수도 있겠다. (2) 아직도 여성이 물리학에서 소수집단임은 사실이지만 요즘 여성들의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약진을 생각하면 기우가 아닐런지... 물론, 물리학은 남성에게도 매우 어려운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끈기와 노력이 특히 많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3) 물리학자가 모두 천재인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천재가 아니다. (4)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도 장학금으로 학위를 마치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답신하고 나서 왠지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내 글을 읽고 벅차서 한 동안 울고 나서 열심히 할 용기를 가졌고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다시 부모님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 보겠다고 하였다. 설령 물리학이 아닌 다른 전공을 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물리에 대한 열정은 쉽게 식지 않을 거라고 했다.

최근 '88만원의 세대'라는 신조어만큼이나 취업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대학의 학과 선택에서도 안정된 직장과 높은 보수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대한 평가는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야 가능하다. 어느 시인의 글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구절을 새삼스레 되새겨 본다.

한국대학신문 기자 (unnys@unn.net) | 입력 : 09-01-19 오전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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