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유학 가서 겪은 어려움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걸어서 등교했고, 한 달에 30달러짜리 하숙집에 살면서 뜨거운 음식 먹어 본 기억이 없어요. 그 때 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드십을 겪는다는 게 굉장히 큰 힘이 된거죠.”
206년 전통의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에서 아시아·태평양 14개국을 경영하는 글로벌 CEO를 역임한 뒤 지난 2월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동수(62) 고문. 그는 미국인들만 리더의 자리에 오르던 듀폰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리더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1987년 듀폰 한국 지사에 입사한 이후 3년 만에 미국 듀폰 뉴존슨빌 공장장이 됐고, 5년 만에 대기업 계열사 사장 격인 ‘부직포 사업부’ 사장이 됐다. 또 3년 뒤 아시아태평양 회장으로 파격 승진 신화를 썼다.
김 고문은 자신의 성공 비결은‘노력’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건 ‘하드십’이었다고 했다. 그는 “브레이크 더 박스(상자를 깨라)”하라고 한다. “상자를 깨고 나오면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공장장에 머물렀다면 편했겠지만, 세일즈로 나오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고, 스스로 성장하는 걸 느꼈죠. 불안하기도 하지만, 상자 밖에는 또 다른 기회가 숨어있어요.”
그는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과 관련해서는 “솔직히 지식이 많지 않지만, 평준화라는건 기회의 평준화지 실력의 평준화는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면서 “아마도 평준화는 모든 사람이 대학 가야된다는 생각과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고 꼬집었다.
올해 3월부터 서울대 경영대 MBA 초빙교수로 ‘경영혁신론’ 교과목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만나게 된 김 고문을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만났다. 그는 기업인으로 성공하기 까지의 과정과 우리나라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나름의 고견을 풀어냈다.
다음은 이경묵 교수와 김동수 고문의 일문 일답.
- 듀폰이라는 회사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사장직에 오르셨는데요. 고문님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요. “제가 성공했다라고 한다면, 노력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회사에서 임원 하다가 듀폰에 와서는 그 동안 쌓은 거 많이 포기했죠. 당시만 해도 아시아 사람들이 각 나라 사장도 못했을 때여서, 아시아 사장을 해야지 하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어요. 승진할 때 마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한 계단 넘으면 다음 계단이 보였어요. 그런 과정을 겪어 여기까지 온 겁니다. 아쉬운 건 롱텀 계획을 세울 수 없던 거였죠. 우리 선배들이 그런데를 가보질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꿈 얘기를 많이 합니다.”
- 11년간 듀폰 아·태회장을 맡으시면서 어떤 역할에 중점을 두셨나요.“듀폰 아시아에 처음 왔을때 규모가 지금의 3분의 1이었어요. 성장하려면 인프라를 키워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제는 아시아에 공장 짓고, 원하는 물건 만들어서 그때 그때 공급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에만 30개, 인도 등 각 나라마다 크고 작은 공장을 지었습니다. 2~3년 했는데 풀리지 않는게 공장 비즈니스 매니지였는데, 대부분 상급자들이 미국 사람들이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로컬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는 한계가 보였어요. 소비자를 몰랐던거죠. 그래서 사람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85%의 키잡을 로컬 사람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적제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것과 함께, 직원 교육과 영입 등에 집중했습니다.”
- 사람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셨다는 얘기군요. 사람 쓰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요.“당시 느꼈던게 지금까지 사람을 뽑는데만 열중했다는거였어요. 교육 계발은 별로 안한거죠. 때문에 사람이 없으면 미국에서 데려오곤 했는데, 그들에게는 비용도 2배나 들고, 또 4~5년 있으면 돌아가고 새 사람이 오는 걸 반복한 거죠. 그런데 리스크 안고 사람에 투자를 집중하니까 스탭핑이 쉬워진겁니다. 회사 내에 인재를 많이 키워놓으니까, 그 다음에는 좋은 사람을 고를 수 있게 된거죠. ”
- 한국 기업과 다국적 기업에 몸담으셨는데,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비교하신다면.
“한국 재벌 기업은 약점도 많지만 강점도 굉장히 많습니다.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빠르다는게 가장 큰 강점이죠. 다국적 기업은 로지컬한 결론은 내리지만 책임 소재도 생각해야하고 다른쪽 의견도 들어야 해서 의사결정까지 시간이 깁니다. 삼성이 소니를 이기고 있는 이유가 거기서 나온다고 봐요. 그런데 아직도 한국 기업에 필요한 건, 투명 경영입니다. 투명경영하려면 윤리는 안할 수 없는 거죠. 마켓에서는 투명 경영을 보여달라고 하고 그런 기업의 가치를 높게 보기 때문이죠. 국제 사회에서는 앤론 사건 이후 법을 어기려는 시도만으로도 처벌 할 수 있도록 돼있는 등 윤리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죠. 선진국과 선진 기업이 되려면 윤리, 환경, 안전 문제 그런걸 잘해야 합니다.”
- 학교 얘길 해볼까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진게 느껴져요. 얼마 전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자기 학위증만 받고 다 나가버려서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어요.“미국에 사는 친척들은 현재 우리 젊은이들 보고 ‘괴물’이라고 합니다. 서구적인 프리한 문화는 다 받아들이고 누리려 하면서, 부모에 의지하는 건 옛날 사람보다 더하다는 거죠. 미국 사람들은 이를 굉장히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부모들 책임이라고 봅니다. 모든걸 아이들 위주로 하는건 문제죠. 저도 똑같은 죄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나름대로 아들은 강하게 키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대 그땐 이미 아이가 너무 커버렸을 때였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일하느라 아버지 역할을 충분히 못했다는 생각에 잘해준다는 생각이 독이 된 거 같아요. (아들이)지금 잘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못 겪어서 지금도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절 찾아요. 지금 그걸 깨려고 하면서 제 아들과 마찰도 있죠.”
- 학부를 외국에서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우연히 그런 기회가 됐어요. 10자매 중에 막내였는데, 학교에서 별로 공부 안했지만 누이와 형님들 공부하는 거 따라하면서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죠. 아버지도 학교 성적은 꼴지해도 괜찮다고 말하시곤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가면서 성적이 점점 떨어졌고, 아버지도 고3되니까 안되겠다 싶었나봐요. 미국 유학가서 겪은 어려움은 지금 젊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생활비 아끼려고 걸어서 등교했고, 한 달에 30달러짜리 하숙집에 살면서 뜨거운 음식 먹어 본 기억이 없어요. 그 때 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드십을 겪는다는 게 굉장히 큰 힘이 된거죠. 회사 들어가서도 어려움과 좌절은 별로 안해봤어요.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몇일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죠.”
- 학교에서도 나약한 학생들에게 하드십을 어떻게 하면 줄 수 있을지 고민해요. 지식은 문제 없지만, 인성교육과 리더십 교육이 문제에요.“우리 교육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주입식으로 가르치는게 아니라, 학생들끼리 서로 의사소통하면서 답을 찾는 그런 교육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합니다. 특히 그런 면에서는 미국 교육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우리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스스로 생각하는 걸 잊고 있어요. 좋은 학생이 좋은 사회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미국 아이들은 '나는 생각이 달라요'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또 미국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스포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한 번 고민해봐야 해요.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것의 연속인데, 스포츠를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걸 배우고 있는 거죠. 이기는 것도 받아들이고, 지면서 견디는 것도 배울 수 있어요. 이보다 더 좋은 라이프 레슨은 없어요. ”
-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자율화 하겠다고 하지만 바뀌는 건 별로 없는거 같아요.
“솔직히 교육정책쪽에 지식이 많지 않지만, 평준화라는건 기회의 평준화지 실력의 평준화는 어쩔 수가 없는거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이 평준화되면 되는 세상이 아니거든요. 평준화에 많은 포커스를 두면 안됩니다. 아마도 평준화는 모든 사람이 대학 가야된다는 생각과 연결되지 않았나싶어요. 모두가 대학 가니까 학생들은 시간과 돈을 쓰고 대학 졸업 후에는 직업도 못 찾는 경우가 발생하는거죠. 기업은 기술자를 못 찾는 문제도 생겨요. 요즘 학력평가 얘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시험 봐서 평가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눈 감고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뭐가 있겠습니까. 미국에서도 SAT봐서 학교별로 지원 점수가 다 나옵니다. 결국 SAT 좋은 사람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길 걷게 할 수 없지 않나 싶어요.”
- 3월부터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데,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지난 30년 동안 일하면서 배운 경험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요. 거기에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죠. 학생들 앞에 서게 되어 마음이 설렙니다. 잘 가르치고 싶지만, 많이 배울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런 티치 런(learn teach learn)'이란 말 많이 합니다. 그래서 회사 교육에서도 직원들을 자체 강사로 많이 쓰죠. 강사 한번 하면 그 사람이 더 좋아지더라구요. 배워서 가르치면 더 많이 배우는거 같아요. 이번 기회에 런 티치 런을 한 번 더 하는거죠. 같이 배우는 거죠.”
- 세계의 젊은이들을 많이 보셨을텐데, 한국 젊은이들을 평가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은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잘 따르고 지식도 많습니다. 굉장히 많은 포텐셜을 갖고 있어요. 특히 심성이 좋은데, 유교적 교육 혜택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젊은이들에게 사회가 좋은 교육시스템을 갖춰주면 좋을 거 같습니다. 약점이라면 아직도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거죠. 특히 글로벌 마켓에서 자신감이 결여되고 성장해보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부족합니다. 공장 직원에게 세일즈 하라고 하면 열에 한 명이 갑니다. 세일즈 하는 친구에게 공장 일하라고 하면 한명도 안갈려고 하죠. 상대적으로 미국 아이들은 굉장히 어그레시브합니다. 철학 전공한 세일즈 부서 직원에게 공장가라고 하면 ‘OK’하고 가죠. 보낼때는 역량이 있으니까 하라는 겁니다. 가서 배우라는거죠. 그런 사람들이 특별한 기여를 하곤 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니까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 김동수 고문은 = 서울고를 졸업한 뒤 도미해 캘리포니아대 화학공학과, 아이다호대 화학공학 석사를 마쳤다. 귀국해 육군 만기제대(71~73년) 후 한양화학과 미국 다우케미컬, 한국화약을 거쳐 1987년 듀폰 한국지사에 입사했다.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듀폰 본사 부사장 겸 아시아 태평양 사장에 올랐다. 지난 2월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고문을 맡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서울대 MBA 초빙교수로 '경영혁신론' 교과목을 통해 학생들을 만난다.
<대담 이경묵 서울대경영대 교수 / 정리 한용수 기자 / 사진 한명섭 기자>